엄마와 어머니 이야기 1
참고로 내 이름은 토보이. 결혼 전 나는 내심 남편을 <남자 토보이>라 생각했다.
가령 대한민국의 모든 여자와 남자를 이것저것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치자. (평가 기준이나 주체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그러면 어쩐지 나와 남편은 여자 부문 남자 부문에서 똑같은 등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나는 남편을 내멋대로 <남자 토보이>라 생각했고, 이 점은 내가 평생의 반려자로 그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보통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호기심 내지 호감을 느껴 시작되는 게 연애라면, 결국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정착하게 되는 게 결혼. (아님 말고)
뭐 물론 비슷하다 느껴서 결혼을 해도, 하고나면 완전 달라지는 게 또 사람. 아니 결혼이긴 하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당사자인 우리보다, 주변이 좀 많이 달랐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건 나의 엄마와 남편의 엄마 (그러니까 내 시어머니).
쉽게 그냥 두 분은 양극단에 계신 분들이다. 한 사람이 N극이면 한 사람은 S극. 두 분은 자라온 환경과 살아온 인생도 양극단, 성격도 양극단... 그저 자식을 나눠가졌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 분들인데…
일단 나의 엄마 :
어려운 환경에서 형제 자매도 없이 성장했고, 가족이라곤 아빠와 우리 삼남매 뿐이다.
일평생 셀러리맨의 아뜰한 아내로만 살아, 절약이 습관이자 특기.
전기세 수도세 아끼는 건 기본, 커피는 편의점에서만, 프랜차이즈 커피는 어디서 받은 기프티콘이 있을 때만 마신다.
각종 할인 쿠폰 적용, 포인트 적립, 이벤트 응모, 무료로 나눠주는 어쩌고저쩌고가 그저 행복한 여인네고, 집 앞 백화점은 지하철 내려 밖으로 나가는 통로로만 이용, 장은 차를 타고 가도 재래시장에서만 본다.
취미는 수영. 삼 십년 넘게 한 곳만 다녀 거기서 사귄 친구가 40대부터 80대까지 세대별로 다 있고, 가끔은 친구 결혼식도 가지만 장례식도 간다.
드라마나 영화는 좀이 쑤셔 못보고, 트로트 오디션이나 아침마당, 동치미, 알토란 같은 예능조차 유튜브 짤로만 본다.
그런가 하면 남편의 엄마 :
형제 자매 많고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 한 것까진 좋았는데, 아버님을 만나면서부턴 불행 시작. 그래도 떡두꺼비 같은 아둘 둘을 낳고, 그 중 한 명은 늙고 후덕한 며느리에게 내어 주셨다.
일평생 부잣집 공주님을 거쳐 사모님으로만 사실 줄 알았는데, 지금은.............. (이게 다 그 놈, 아니 XX님 때문이라고)
사람 많고 냄새 나는 데는 현기증이 나서 못 가고, 한적한 산책로, 쾌적한 백화점, 조용한 카페 등이 사모, 아니 어머님 만의 놀이터.
책과 영화를 즐기고 빵과 커피를 사랑하는 여인 되시겠다. 백화점 과일, 호텔 뷔페, 유기농 먹거리는 극호. 그에 반해 대형마트 팡팡 세일, 줄 서는 맛집, 길거리 음식은 (말씀은 안하셔도) 극협.
드라마 정주행, 조간 신문 읽기, 독서, 청소, 산책... 주로 정적인 일들로 일상을 채우시고, 가끔 만나는 자매님들과의 수다가 일상 속 일탈 같은 분이다.
이렇게나 다른 두 분이 처음 만난 건, (당연하지만) 우리들의 상견계 자리다.
길어야 두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각자의 엄마를 마크하느라 두 시간이 스무 시간 같던 하루였는데...
특별히 고심 끝에 우리가 정한 상견례 장소는 호텔 1층 가든 뷔페. 이조차 나와 남편은 각자의 엄마들에게 (나의 엄마는 뭐 이리 비싼 데를, 남편의 엄마는 어디 이런 점잖지 못한 데를) 잡았으냐며 잔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날의 상견례가 별 탈 없이 지나간 건 어찌보면 다 장소 덕분이다.
보통은 탁 트인 공간보다 조용한 룸을 선호하고 뷔페 같은 덴 생각조차 안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지금도 나는 예비 신랑신부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어색한 상견례 자리에 비교적 조용한 호텔 뷔페만큼 좋은 데도 없다.
안 그래도 불편한 자리. 시종일관 어색한 공기가 양쪽 집에서 뿜뿜일텐데, 룸처럼 갇힌 공간은 물리적으로 봐서도 그 공기가 빠져나갈 공간이 없다. 그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면, 어휴...
그에 비해 탁 트인 호텔 가든 뷔페. (뭐 물론 한쪽에 비교적 조용한 자리를 잡기는 했지만) 일단 가장 좋은 게 어색하면 그냥 먼 산(?)을 보면 된다. 주변에 시선 둘 데가 널렸다. 그러다 가끔 운 좋으면 저만치 보이는 어떤 것, 가령 막 나온 요리라던가 제법 멋스러운 꽃장식 같은 걸로 화제 전환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뭣보다 좋은 건, 언제고 마땅치 않으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된다. 단, 속으론 '이 여편네 더이상 못들어주겠네' 욕을 할지언정, 한 손엔 접시를 들어야 한다는 거! 다시 말해, 듣기 싫고 불편할 땐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적당히 음식을 가지러 가면 그만이란 말인데...
하나 주의할 건,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말하고 있는 중간에 음식을 가지러 가선 절대 안된다는 거. 뭐 물론 결혼을 안시킬 작정이면 모를까, 결혼을 시키자고 만난 자리에서 그러실 어른들은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덕일까, 우리는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만큼 무탈하게 상견례를 마쳤고...
우리의 결혼식. 그 후 7년 동안...
나의 엄마와 시어머니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두 번째 대면의 기회가 없었다고 해야 맞을텐데...
보통은 2세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백일을 맞으면, 그 아이가 돌잔치를 하면, 양가 어른들이 모두 모이지만, 우리는 2세가 태어나지 않았고 신기하게도 양가 집안 어느 쪽으로도 결혼이든 장례식이든 아직 아무런 경조사가 없었다.
그 탓에 양가의 소통이라곤, 나를 통해 두 어른이 가끔 안부를 묻고 듣는 정도가 전부였는데...
그 사이에 있는 나. 엄마와 어머니는 딱히 부딪힐 일이 없지만, 나는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두 분을 중간에서 모드를 달리해 상대하느라 가끔 고되다.
예를 들면,
-마트 떨이 때 세일 스티커 붙은 과일 사는 엄마 VS 과일은 무조건 싱싱하고 비싼 걸로 사라는 어머니.
엄마와 통화 땐 마트 팡팡 세일 때 엄청 싼 샤인머스켓을 겓했다고 자랑하고, 어머니를 뵈러 갈 땐 제일 비싼 샤인머스켓을 사들고 간다.
-직접 만든 반찬을 비닐에 싸주는 엄마 VS 유명 반찬집 반찬도 새 찬통에 옮겨담아 보내시는 어머니.
상황이 이러니 친정에 갔다 엄마 반찬을 들고 오는 날은, 집에 와 반찬통에 옮겨 담기 바쁘다. 비닐이나 재활용 플라스틱 통에 담긴 반찬 같은 건 평생 안 먹어본 남편일 것 같아서...
-프랜차이즈 커피도 한 잔 시켜 나눠먹는 엄마 VS 만 원 커피도 가심비로 드시는 어머니.
이제 엄마도 좀 스타벅스에 가고, 가끔은 어머니도 빽다방이나 메가커피 정돈 드셨으면 하는 게 내 생각.
-TV나 인터넷 맛집 보면 가보고 싶어하는 엄마 VS TV나 인터넷 맛집 모시고 가면 불편해 하시는 어머니.
"친정 식구들이랑 가봤는데 맛이 괜찮아서 어머니랑도 가려구요." 같은 건 아예 시도도 안하는 게 낫고...
-싸게 사는 거 좋아하는 엄마 VS 제 값 주고 사야 신뢰하는 어머니
똑같은 브랜드 옷을 엄마한텐 온라인에서 헐값에 샀다 말하고, 어머니한텐 백화점에서 제 값 주고 샀다 말씀드린다. 사실은 아울렛 제품일 때가 많다.
이러니 내가 봤을 때 두 분은 고교 동창이었더라도 절대 친구는 안됐을 것같은 분들인데...
어느 날 두 분이 난데없이 동침을 하셨다.
(이어지는 2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