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신부 뒷담화

일상 소소 생각

by 토보이

오랜만에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에 왔다.


사이렌 오더로 세 개의 카테고리에서 각각 제품을 주문해 미션을 달성하면 커피 쿠폰을 추가로 주는 행사를 하고 있길래, 나름 유의사항도 꼼꼼히 살펴보고 청구 할인되는 카드까지 매칭해, 커피 쿠폰을 두 개나 확보하고, 기분이 한껏 업 돼 있는데...


문득 옆 테이블 내 또래 여성 네 명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가 쏠렸다. 네 명은 모두 이미 중학생 쯤 되는 아이를 둔 엄마들. 한 동네에 살며 이래저래 왕래가 많은 듯 친근해 보였다.

그런데 네 명 중 한 명이 주도적으로 토해내는 이야기는 어이없게도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마흔이 넘어 뒤늦게 결혼을 한 자기 친구 이야기. 그녀는 자기 역시 친구를 통해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을 그 친구를 전혀 모르는 동네 엄마들에게 떠들고 있었다. 막 새 신부가 된 친구의 시어머니 이야기부터, 심지어 그녀의 은밀한 첫날 밤 이야기까지. 소위 말하는 뒷담화. (뒷다마 까기)

나 역시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내가 결혼할 당시 주변의 친구들은 이미 아이를 한 둘씩 둔 학부형이었기에, 나는 마치 그 엄마들 앞에 발가벗겨진 그 신부가 나인 것마냥 얼굴이 다 화끈거렸는데...

결정적으로 그녀가 내뱉은 한 마디에 나는 바로 KO!


"근데 말야. 결혼식 때야 이쁘다 이쁘다 했지만 솔직히 진짜 못봐주겠더라, 나이 든 신부는. 결혼도 어릴 때 해야 이쁘지, 다 늙어서 꾸며봐야 애처롭기만 해!"


그 순간 알뜰 구매에 커피 쿠폰까지 챙겨 한껏 업돼 있던 나의 기분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 여성들, 엄마들을 향한 적개심(?)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사실 나와는 별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고, 원래 없는 데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는데 그게 뭔 대수인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건, 지금은 뭔가의 이유로 연락이 끊겼지만 한 때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S였다. 당시 중학생 딸이 있었던 S. 딸의 친구들 엄마와 종종 술자리도 하고 여행도 간다던 S. 그 옛날 S도 동네 엄마들과 어울리며 늙은 신부였던 나에 대해 저렇게 말했을까. (아니라고 믿고싶다)

그리고 나는, 나 역시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저런 식으로 했던 적.. 정말 없었던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어쩌면 그 엄마들을 보며 떠올린 건 친구 S가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내 친구를 모른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상관도 없는 사람들 앞에서 내 친구를 가십거리로 이용한 적 너무너무 많다.

수다가 뭐 별 건가. "있잖아. 나 아는 친구 중에 이번에 결혼하는 친구가 있는데..." "참 나 얼마 전에 내 친구한테 들었는데..." "내가 말했나? 내 친구 중에 말야... "

이렇게 시작되는 수다의 대부분이 실은 내가 대수롭지 않게 껄껄대며 떠들었던 누군가의 뒷담화!

그 순간 갑자기 옆테이블 여성들에게 향했던 분노가 나 자신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뒤늦게 번뜩 든 생각! ‘혹시 S가 별 이유도 없이 연락을 끊은 것도 나의 그런 점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것도 아니라고 믿고싶다)


반면교사다!


늙은 신부라 괜히 울컥했던 나는 그녀들의 대화를 통해 지난 날의 나를 되돌아보고 반성한다.

그리고 다짐도 한다. 앞으론 절대, 건너가지 않을 이야기라고 해서, 상대가 이야기의 주인공을 모른다고 해서, 쉽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십 거리로 떠들지 않겠다고...


커피 쿠폰도 얻고, 덩달아 교훈도 얻어가는 오늘의 스타벅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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