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싫은 치과
십 년 전쯤 어느 날. 나는 달디 단 오레오 쿠키를 늦은 밤 방 안에 숨어 혼자 먹다가, 밤새 치통에 시달린 적이 있다. 날이 밝자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달려가 썩은 사랑니를 뽑은 나는 그때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는 맛있는 건 절대 혼자 먹지 않겠다, 둘째는 치아는 절대 아픈 상태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거였는데...
그때부터 매일 세 번 이상의 양치질과 치실을 사용하고, 매년 정기검진과 스케일링은 빼놓지 않고 해온 나.
그런데도 나에겐 아픈 손가락... 아니, 아픈 이가 하나 있었다.
3년 전 정기검진 땐 그냥 좀 두고 보자던 충치였고, 2년 전엔 보철이 필요하다 하여 신경치료는 않고 크라운만 씌웠는데, 1년 전엔 여행 중 갑자기 통증이 밀려와 했던 크라운을 다 뜯어내고 신경치료를 다시 받게 만든 <이>. 그런데도 증상이 말끔하지 않아 결국 올 봄 나는 그 이를 뽑았다. 그리곤 말로만 듣고 광고에서만 보던 <임플란트>를 했다. 한 마디로 나의 왼쪽 위 어금니는 다니던 치과 확장이전에만 소소한 공을 세우고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인데...
이 이가 돈과 시간을 잡아먹기 시작한 건 2년 전 봄부터다. 시작은 사실 치과가 아니라 백화점이었다.
집 앞 백화점에 안쓰는 플라스틱 용기 5개를 가져다주면 포인트 3,000점을 제공한다는 행사 안내를 보고 눈이 번쩍 뜨인 나.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도로 눕는 대신 온 주방을 뒤져 플라스틱 용기를 찾기 시작했다. 환경보다는 내 몸을 끔찍하게 아끼는 나는 되도록이면 플라스틱보다 유리 용기를 사용하는 뇨자. 생각보다 안 쓰는 용기가 잘 없었다. 그래서 잘 쓰는 용기까지 굳이 비워 5개를 맞춘 다음에야 집을 나섰는데...
백화점으로 가는 7분 남짓한 시간. 갑자기 대로변 상가에 치과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곤 코로나로 잠시 미뤄뒀던 스케일링이나 받을 겸, 백화점보다 먼저 병원부터 들렀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간 치과에서 인레이 하나, 크라운 하나를 진단받고 그 즉시 70만원 넘게 결제. 백화점 포인트 3,000점 챙기겠다고 집을 나섰다 생각치도 않던 거금을 치과에서 써 버렸는데...
치과는 아무 잘못이 없다. 안다. 알지만 그래도 강탈 당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뭣보다 정형외과가 끝나니 이번엔 치과인가. 우스갯 소리로 병원 투어에 돈은 줄줄 새, 남편 다음으로 자주 보는 분들은 병원분들... 불행까진 아니어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정작 이는 전혀 안 아픈데도 속이 쓰렸다. 그리곤 헛웃음이 났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신경치료까지는 필요 없다고 하여, 돈 대신 시간은 번 느낌이었는데...
그 다음 해. 간간이 불편한 느낌이 들어도 이게 적응 기간이라 그런 건가 싶었던 이가 결국엔 사달이 났다. 그것도 집이 아닌 여행지에서. 당시 나와 남편은 순천과 여수를 묶어 주말 여행 중이었고, 첫 날 출발 전부터 나는 조심스럽게 이가 아파왔다. 그렇지만 별 일이야 있겠냐 싶은 생각에 비상약 정도만 챙기고 출발을 했는데.
순천에 도착한 순간부터 음식조차 씹을 수 없게 아팠던 이. 심지어 입 안에 물을 머금고 있지 않으면 한 순간도 견딜 수 없을만큼 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결국 나와 남편은 순천에서 치과를 찾았다. 그런데 터미널 앞 눈에 띄는 큰 치과들은 예약 없인 진료 불가거나 대기만 두 어 시간. 반나절 정도를 구급 맵에서 여행지 대신 치과만 찾아 '치과 찾아 삼만리'를 한 끝에, 나는 생전 처음 가보는 아파트 상가 안에서 조그만 치과 하나를 발견하고 마침내 진료를 받았다. 진료라고 해봐야 결국엔 진통제 처방 정도였지만, 집에서 챙겨간 타이레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강력한 진통제였을까, 그 덕에 남은 일정은 무사히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내가 이가 아파 죽는 순간에도, 의사 선생님이 자신과 동문인 걸 확인하고 좋아 죽던 남편. 통증만큼 이 또한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다니던 치과에 내원한 나. 치과에선 1년 전 보철 치료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이가 아니라 코에 염증이 있어도 이가 아플 수 있으니 이비인후과에 가보라고 했다. 그 후 나는 이비인후과에 내원 항생제만 2주를 처방받아 먹었고, 그래도 안 나아 결국엔 다시 치과, 1년 전 씌운 크라운을 뜯어내고 두 달간 재신경치료를 받았는데...
그 사이 내가 먹은 진통제와 항생제, 거기다 치과와 이비인후과를 돌며 정신없이 찍은 X-레이와 CT만 생각하면... (휴) 몸 생각한다고 플라스틱 용기 대신 유리 용기 사용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이렇게 한 방이면 도로 제로다.
그런데 신경치료에 보철까지 다시 해 넣었으니 이젠 진짜 끝인가 싶었던 이가 올 봄 다시 아팠다. 이 병원 저 병원 가봐야, 결국엔 발치 후 임플란트. 모든 치과 치료의 끝은 임플란트인가 싶게, 가는 병원마다 부르는 값만 차이가 있을 뿐 똑같은 처방을 내렸다.
그래서 결국 나는 2년 넘게 나를 괴롭히던 이를 뽑았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임플란트란 걸 했다. 어르신들만 하는 건 줄 알았던 그것을 40대 중반 나이에.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갱년기도 조기, 임플란트도 조기... 호를 아예 그냥 '조기'라고 지어버릴까보다)
그랬더니 통증이란 게 말끔히 사라졌다. 그간 적응 기간이려니 하며 애써 참았던 불편함들은 사실은 그 놈(이)의 호소였다. 난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으니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는. 나 좀 뽑아달라는. 그게 틀린 말이 아닌 게, 나가게 해줬더니만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뽑았더니만 아프지 않았다. 3년을 줄곧 조심조심, 불편하고 아파도 애써 모른 척, 그렇게 지낸 시간들이 억울하고 분할만큼 편해졌다. 이제는 얼음도 깨먹고, 아몬드도 씹고, 갈비도 뜯고... TV CF에서 말하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삶을 누리는 중인데...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닌 나의 이야기(나도 지친다)
정말 미쳐버리겠다. 한 쪽이 멀쩡해지니, 이번엔 다른 한 쪽이 또 말썽이다. 그도 그럴 게, 왼쪽 어금니를 치료하는 시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당분간 왼쪽으론 씹지 마세요." 였다. 그러니 왼쪽 어금니가 할 일까지 오른쪽 어금니가 도맡아 하다 과부하가 걸려버린 게 분명했다.
서둘러 병원을 찾았더니 아니나다를까 의사 선생님 왈 "어쩌죠. 이번엔 오른쪽 어금니에 금이 갔어요." 순간 내 심장에도 와장창 금이 가는 게 느껴졌다. 의사 선생님의 부연 설명인즉, 보통 한 쪽이 그러면 순차적으로 다른 한 쪽도 그렇게 되기 쉽다는데, 내겐 선생님의 그 말이 너무 쉬워 보였다.
"선생님 말씀을 너무 쉽게 하시네요. 3년 넘게 고생고생, 치과에 다달이 적금 붓듯 진료비를 가져다받치는 환자 마음은 아세요, 모르세요?" 라곤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속으론 괜히 분해서 씩씩거렸는데...
물론 다시 말하지만 치과도 의사선생님도 아무 잘못이 없다. 그렇다고 내 탓도 아닌 게, 나는 정말이지 오레오 사건 이후, 정말 열심히 치아 관리를 해왔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올바른 양치법에 대해 이런저런 유투브 채널을 찾아보다 나도 모르게 깊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나는 먹었다 하면 양치를 하는 사람이었을 뿐, 제대로 양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려서 배운 3.3.3 양치법 말곤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반면 가끔 졸리고 귀찮으면 식사 후에도 그냥 자버리는 남편. 세 살 아이 어르고 달래듯 양치 좀 하라고 하면, 남편은 꼭 "네가 해준 맛난 걸 먹었는데 어떻게 양치를 해버려. 자면서 이 맛 좀 더 음미해야지."하며 침대 속으로 숨어버리곤 한다. 그런데도 남편은 생각보다 이가 멀쩡하다. 남편에게선 이가 아프단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고, 매년 정기검진 때도 남편은 작은 충치 정도만 발견될 뿐 이렇다할 치료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
이유가 뭘까? 어디서 보니 이도 체질이고 유전이라고 하던데 남편은 나타난 건치거나, 아니면 나와 달리 한 번 할 때 제대로 양치하는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다.
그래서 나도 양치법을 다시 배웠다. 그리고 요즘은 배운 양치법대로 천천히 차근차근 양치를 한다. 먹으면 바로 양치하는 건 전과 다름 없지만, 그 전과 달리 매우 천천히 꼼꼼하게 한다. 그리고 양치 후엔 꼭 치실과 가글까지. 3단계 쓰리콤보를 실천 중이다.
천천히 하고 오래 하는 탓에 양치가 매우 큰 일이 돼버려 요즘은 먹는 것까지 귀찮을 정도. 자꾸 먹으면 자꾸 양치를 해야하니, 처음엔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는가 싶더니만, 도리어 요즘은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아무튼 요즘은 자꾸 먹던 한꺼번에 먹던, 먹고 나면 바로 양치질을 잘 하는 어른이 됐다.
진작부터 이렇게 좀 하던가 아닐 거면 치과 보험이라도 들어둘 걸. 껄껄껄...
만일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나는 이런 습관만큼은 꼭꼭꼭 제대로 알려줄 것이다. 뭐 물론 우리 부모님도 제대로 알려줬으나, 내가 안 한 거겠지만 말이다.
누군가 그랬다. 치과 의자는 "어른이용 생각하는 의자"라고.
나이 마흔도 훌쩍 넘어 생각하고 배우는 게 참 많은 요즘이다. 노화가 아니라 성장이라고 생각하면, 이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