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걱정인형의 유래
저는 안해도 될 생각 때문에 때론 반드시 해야할 행동도 잘 못하는 주저못난이예요.
생각이 과해 주저하고, 생각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참 많아요.
운전면허 취득만 해도 그래요. 몇 차례 따 볼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때마다 안해도 될 생각들을 이리저리 끌어모아 결국엔 안 딸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네 주변 누구는 열 번만에 땄다는데, 그럼 넌 열 번도 더 넘게 떨어질 거야. 그럼 그때마다 드는 응시료(+학원비)만 다 합쳐도 백만원이 훌쩍 넘어. 너 그 돈 있어? (없지. 안 따는 게 낫겠다)'
'그래서 땄다 치자. 근데 새로 이사온 동네는 온통 공사장 천지에 밤낮 가리지 않고 큰 덤프트럭들이 도로를 무섭게 내달려. 너는 그 옆을 우리 쪼꼬미 붕붕이로 달려야 하고. 너 자신 있어? (없지. 안 따는 게 낫겠다)'
'뭣보다 네가 당장 운전면허를 따야 할 특별한 이유, 있어? (없지. 그래 안 따는 게 낫겠다)' ...
저는 제 자신, 아니 제 안에 운전면허 취득을 반대하는 그 어떤 아이와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눠요. 그러다 결국엔 포기, 지금의 무면허 비운전자가 됐죠.
심지어 가끔 꾸는 악몽 중 하나는 운전하는 꿈이에요.
거짓말 1도 안보태고, 운전도 못하는 제가 멈추지 않는 차에 올라타 무작정 달립니다. 반복되는 위기. 이 레이스, 아니 고문의 끝은 결국 제가 어딘가를 들이박고 차가 멈춰야만 끝이 나요. 그런데 그게 두려운 저는 죽을 듯 밀려오는 공포에도 운전대를 놓치 못하고 계속 달립니다. 죽을까봐 달려요. 그러다 잠에서 깨는데. 저에겐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
네. 저는 운전면허 취득이 두렵고 귀찮고 사실은 그냥 별로 안 땡겨요. 주변에선 온갖 좋은 점들을 들어 운전면허 취득을 강권하지만, 그 어떤 잇점에도 진심으로 혹해 본 적...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넌즈시 운전면허 취득을 종용하던 남편도 최근엔 돌아섰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종용으로 제가 운전면허를 땄다가, 여기저기 들이박아 돈 물어줄 일이라도 생기면 (혹은 사고라도 나면) 그 책임에서 자신도 자유롭지 못할 걸 아는 거겠죠. 슬쩍 한 발 빼는 모양새더라구요. "따면 좋긴 하겠지만, 안 땡기면 말고"
그런데 사실 저는 남편이 운전하는 것도 불안해요.
남편은 대학시절까진 차를 몰다가, 이후론 내내 운전대를 놓고 뚜벅이로 다녔고 최근에서야 자차를 구입하고 운전을 다시 시작한 사람.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종종 불안한 순간들이 있었어요.
워낙에 꼼꼼하고 조심성 있는 성격이라 운전 자체는 늘 누구보다 안전운전을 해요. 그런데 가끔은 그 조심성 때문에 아찔한 순간들이 펼쳐진다고나 할까.
일예로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데 그 놈의 조심성 때문에 한 번에 들어가지 못하고 늘 들어갈 듯 말 듯 삐쭉삐쭉 댑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도리어 뒤따라 오는 차에는 혼선을 줄 수 있단 생각이 들어요.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제가 봐도 그래요.
그래서 저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오빠, 나 없을 땐 가급적 운전 안했으면 좋겠어."
뭐 물론 운전도 못하는 제가 옆에 있다고 해서 달라질 건 하나도 없겠죠. 그렇지만 혹시라도 제가 없는 데서 발생할 수 있는 그 어떤 일이 저는 늘 걱정이거든요. 그래서 운전은 늘 같이 있을 때만 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어디 이뿐이게요?
사실은 남편이 지하철로 출퇴근을 해도 제 걱정은 마찬가지예요. 괜히 지하철에서 쓸데없는 시비라도 붙진 않을까, 오며가며 사고라도 나진 않을까,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등등... (이 정도면 병이죠)
그래서 이건 저만의 비밀인데요, 남편이 출근할 때 제 배웅 인사는 늘 (반드시) "잘 다녀 와." "잘 갔다 와." 입니다. 급하게 서두르는 통에 부주의하게 그냥 "얼른 가."라고 뱉은 날은 살짝 좀 뒤끝이 남아요.
이건 언젠가 본, 아니 어디선가 들은 얘기 같기도 한데 출근할 때 가라고 했더니 진짜 가서는 안 돌아왔다고... 사실은 너무 영화같은 얘기죠. (영화의 한 장면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건 그냥 제가 걱정이 많아서 그래요.
최근엔 부쩍 갱년기 불면증까지 심해지면서, 걱정에게 좋은 공격 포인트까지 내줬다고나 할까. 매일 밤 <잠 못 드는 밤 걱정은 쏟아지고>의 연속 입니다.
잠이 안 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보면, 심지어 냉장고 뱃속까지 걱정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돼요.
'신김치는 어쩌나. 묵은 쌀은 어떻게 하지? 찌개를 끓여 카레를 해? 시든 채소를 몽땅 해치울 수 메뉴는 뭐 없을까? 안 먹는 냉동식품은 좀 사지 말아야하는데' 등등...
이건 그냥 재밌자고 든 예이긴 하지만, 이외에도 쓸데없고 잡다한 고민을 일부러 만들어 하고 있는 접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래서 잠이 쉬이 오지 않나 싶기도 해요.
그래서 요즘은 이 말을 자주 되뇌여요.
<걱정하는 일의 99% 일어나지 않는다> 되뇌이다 보면 믿게 되니까요.
그리고 슬쩍 걱정인형 하나도 들여볼까 합니다.
사실 저는 광고에서 보던 걱정인형이 걱정이 많은 캐릭터라 걱정인형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어디 가면 우스갯 소리로 '나도 걱정인형이야'란 말을 자주 하곤 했는데...
사실은 걱정을 대신 해주는 인형이 걱정인형이랍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과거 과테말라에선 걱정이 많아 잠 못 드는 아이의 머리맡에 인형 하나를 놓아줬다고 해요. 그러면 걱정인형 왈, '걱정은 나에게 맡기고, 너는 잠이나 자렴'. 그러면 아이는 안심하고 잠에 빠졌다고 하는데...
저에겐 브런치의 이 공간도 걱정인형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무엇이든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은 되도록 글로 털어놓으려고 해요. 사실 털어놓고 보면 별 거 아닌 일이 참 많잖아요.
앗, 방금도 살짝 그 신기한 경험을 한 것 같긴 한데…
‘운전면허?
따고 싶어지면 따고 아님 말지 뭐!
누가 시켜서, 남들 다 하니까,
도전하지 않는 게 쪽팔려서 억지로 운전을 하진 말자!!!‘
이상 고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