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보이 Jun 24. 2024

신혼권태기

어제는 새로 생긴 카페에 가 커피를 마시고, 함께 쇼핑을 하고, 배불리 고기를 구워 먹었어도

오늘은 이혼을 생각할 수 있는 게 부부?


어제는 결혼 8년차 여전히 사이 좋은 신혼였다가도,

오늘은 결혼 8년차 이혼 위기의 권태기일 수 있는 것도 역시 부부?   


어제의 우리와 오늘의 우리 중,

우리 부부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남편과 좀 더 잘 살아보겠다고 지금의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할 갖가지 방법을 궁리 하면서도,

남편이 뭘해도 의욕이 없고 부정적이기만 하면 도로 그냥 확 안살아버릴까 생각하기도 하는 나.


이 둘 중 진짜 나는 누굴까?  

 



<어쩌다 어른>이라는 TV프로그램에 노화기내과 전문의가 나와 강연하는 걸 봤다.

긴 출퇴근 시간이 가속 노화를 촉진한다는 말에 그야말로 가슴이 철렁.

나는 노후를 위해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부터 챙기자며, 지금보다 많이 벌지 못해도 가까운 회사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남편에게 이직을 제안했다.

강연 하나에 마치 무슨 인생 가치관이 바뀌기라도 한 것마냥 섣부르게 이직 얘기부터 꺼낸 게 잘못였을까.

대책도 없고 좋은 방법도 아닌 것 같다며, 남편이 썩 내켜하지 않았다.  

그 반응에 나는 또 실망 그리고 좌절...

(그럼 뭐 "오, 역시 당신이야! 돈보다 내 건강을 생각해주다니. 감동이야." 이럴 줄 알았나?)

그럴 줄 알았나 보다. 실망을 넘어, 내 말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남편에게 벌컥 화까지 났다.


[나는 해결해보겠다고 이 궁리 저 궁리 하는 거잖아. 그런데 오빠는 매사 부정적으로 쳐내기만 하네.

이제는 나도 좀 지친다. 지치다 그냥 확 관둬버리고 싶어질까봐 나도 무서워.]  


는 메모장에 뱉어만 두고 보내지는 않은 카톡.

실은 방금 전까지 마음 속에 요동치던 내 생각이다.

그러면서 나는 '새 생활 계획' (나는 이걸 하러 카페에 온 참)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낮술이나 마실까, 그것도 아니면 짐을 싸서 친정에 가버릴까, 거칠고 충동적인 생각들을 혼자 마구 키웠는데...


그러다 일단 눈을 감았고 호흡을 가다듬었으며 자리에 앉아 글을 썼다.

처음엔 메모장에 들었던 생각 그대로를, 그리고 그 다음엔 조금 더 정리된 지금의 이 생각을...

그랬더니 방금 전 카톡은 안 보내길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송 버튼 하나의 차이지만 내 속마음을, 그것도 거칠고 충동적인 내 마음을 나만 아는 것과 남편이 아는 건 결과적으론 너무 큰 차이다.

그리고 마음 같은 건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 수도 있지만, 마음이 말이 되는 순간 그건 돌이킬 수도 없다.

그러니 카톡을 안보낸 건 정말 잘 한 일. 다행인 일... (휴)


한 시간 전만 해도 나는 금방이라도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을 것 같은 위기의 주부였다.

그런데 카톡을 보내지 않고 한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나는 여전히 늙은 신혼 아내 우리집 주부다.

집에는 새로운 한 주를 활기차게 시작하는 의미로다 내가 사들인 건강한 식재료들이 한가득이고, 나는 퇴근해 돌아올 남편을 위해 건강한 밥상을 차릴 예정이다.  

낮술이나 마시고 친정에나 가버릴까 했던 잠깐의 충동을 물리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의 계획대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됐다. (휴)


나는 위기의 주부일까, 늙은 신혼 아내일까.

어제 카페에서 나눴던 담소도 오늘 냉소가 가득했던 전화통화도 모두 우리 부부가 나눈 대화이듯,

아마 두 모습 다 요즘의 나일 거다.   

그럴 수 있다 생각은 하지만, 이 반복이 힘든 건 사실이다. 돌파구를 찾았으면 좋겠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부디...  


 

 






 


  

 

     


 

작가의 이전글 멜로가 체질인 사람의 <하츠코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