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보이 Jul 10. 2024

카레라이스 한 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싸웁니다.   

새 달 첫 날부터 또 부부싸움. 

이번엔 카레라이스다. 

퇴근해 집에 오면 저녁 8시가 훌쩍 넘어버리는 남편. 그래서 평일엔 집밥을 잘 안먹는다. 

차리고 먹고 치우고 그러고나면 곧 자야 하니 그게 별로라나 뭐라나. 

일단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게, 첫째 차리고 치우는 온전히 아내인 나의 몫이다. 남편은 먹기만 한다. 

그런데도 남편이 평일 집밥을 거부하는 건,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것조차 번거롭고 피곤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 둘째, 평일 저녁엔 아무 것도 먹지 않느냐. 그건 또 아니다. 

남편은 오로지 집에서 먹는 밥만 거부할 뿐, 집밖에서 먹는 대부분의 것들은 다 잘 먹는다. 

치킨에 곁들이는 맥주, 커피와 함께 먹는 빵, 뜨끈한 찌개에 밥... 종류를 가리지 않고 내가 먹자고 하는 것들은 다 잘 먹어준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하면 남편이 원하는 건, <퇴근 후 집에선 조용히 쉬기만 하는 것>이고, 남편이 꺼리는 건 <집에서 지지고 볶아서 차려 먹는 밥>일 뿐인 건데...   


월요일 저녁. 내가 별안간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남편에게 들이밀었다.


"오빠, 저녁에 카레라이스 할 건데 일찍 와서 먹어."

"갑자기 웬 카레라이스?"

"제대로 된 밥을 안 먹으니까, 자꾸 이상한 거 집어먹고 다니는 것 같아서. 

간단하게 차릴테니까 집에 와 밥을 먹어."

"아니 나 진짜 괜찮아. 나는 그냥 과일이랑 달걀이면 돼."


여기까지가 점심시간, 남편과 나눈 전화 통화다.

7월의 첫 날이었고, 2024년 하반기의 첫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라도, 장시간 출퇴근과 격무에 시달리는 남편을 위해 매일 간단한 저녁상을 차리겠노라, 새 생활 계획을 세웠던 참이다.

그러면 건강도 챙기고 절약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그리고 남편도 말은 번거롭다 차리지 말라 그러지만, 차려주면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그렇지만 이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였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다 만들어놓은 카레라이스를 보고도 저녁상을 물렸다.  

"나 진짜 밥 생각 없어. 그러니까 차리지 마."

그리고 그 말에 버럭 짜증이 치민 나는 보란듯이 아니 들으란 듯이, 거친 소리를 내며 차렸던 상을 치웠다. 

이후 무겁게 내려앉은 집안 공기. 

남편은 안방에 가 옷을 벗지도 않고 바닥에 눕는 걸로 시위를 했고,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무작정 핸드폰만 들고 집밖으로 나와버렸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일단 나는 애써 만든 저녁밥을 남편이 알아주지 않는 게 속상했다.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에도 시장까지 왕복 3,40분을 걸어가, 그곳에서부터 무겁게 들고 온 과일과 채소다. 그리고 그걸로 부랴부랴 만든 카레라이스와 갓 버무린 오이무침였는데...

한 솥 끓여 놓은 카레를 남편이 먹어주지 않으면, 앞으로 꼬박 일주일 나의 점심이 카레라이스인 것도 짜증.

남편이 저녁을 먹어주지 않으면 나는 거의 대부분 밥을 집에서 혼자 먹는다. 그런데 거기다 메뉴까지 남은 카레면... (우울) 


그런데 그렇다고 버럭 화까지 낼 일이었을까. (무심한 듯 거친 말도 내뱉었다)

나는 감정이 쏟구치면 참지 못하고 쏟아내는 게 늘 문제다. 아닌 척을 못하면 누르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는 게 늘 탈이다.  

잠시 한 템포 쉬면서 조용히 넘겼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남편도 이내 씻고 나와 다시 카레라이스를 먹겠다고 식탁에 앉진 않았을까.


남편은 분명 카레라이스 대신 과일과 달걀만 먹겠다고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멋대로 그 말을 무시했고, 오늘 하루 남편의 회사 일은 어땠는지, 출퇴근 길은 얼마나 무덥고 힘들었는지 그런 건 고려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더위와 일에 지친 남편이 밥맛 같은 게 있을리 없다는 건, 아예 생각조차 못했다.  

그저 나는 내가 만든 저녁 밥상 앞에 남편이 앉아 카레라이스를 맛있게 먹는 모습만 상상했다. 그리곤 내가 한 일이라곤, 남편이 내 마음 같지 않다고 해서 섭섭해 하고 화를 낸 일 뿐인데... (아, 나란 사람)  


글을 쓰며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 좋은 점은 부르르 올랐던 감정 대신 이성으로 그 일에 접근해 있다. 그리고 그러면 나면 이전엔 보이지 않던 내가 보인다.  

요즘 나의 포지션은 늘 상대방의 의사같은 건 신경쓰지도 않고 뭔가를 해주는 사람. 그리고 해주면 당연히 고마워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부쩍 남편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응을 보였고, 이에 나는 그 서운한 참지 못하고 버럭. 이게 요즘 우리 부부에게서 보이는 부부싸움 패턴이다.

여기서 내가 미처 생각치 못했던 건 두 가지다.   

내가 베푸는 게 호의라고 해서, 그리고 상대가 배우자라고 해서, 당연히 받아주고 좋아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나에겐 호의인 것이 상대에겐 호의가 아닐 수도 있고, 부부도 결국은 개체다. 남편이 마음 같을 없다. 

그걸 깨닫고 인정하고 나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실은 최근 잦은 부부싸움에 사소한 싸움 내용보다는 우리의 앞날이 더 걱정됐던 나.

그냥 부부도 이러면서 성장하는 거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남편과 싸워야만 글을 쓰는 내가 더 걱정이다.  

어찌 된 게 요즘 내 브런치의 자양분은 부부싸움인 것 같아, 그건 그거대로 조금 마음에 걸린달까.

이러다 다음 브런치북의 제목은 "부부싸움 대백과"가 될 판. 




  




 


  



 


작가의 이전글 신혼권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