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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보이 Jul 30. 2024

방학 모임

동창 모임 나가다 도로 집에 갈 뻔한 사연.  

나에겐 일명 <방학 모임>이 있다.

방학동 모임이 아니라 방학에만 만나는 친구 모임이다.

모임의 구성원은 삼십 년 전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네 명.

서로 오래 알고 지낸데다, 내가 유일하게 이탈하지 않고 속해 있는 모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만나는 건 고작해야 일 년에 두 번, 많아야 서너 번 정도. 그것도 방학에만 만난다.

이유는 모임의 일원인 K가 교사인 관계로, 이 시기가 가장 시간 맟추기가 용이해서다.

그러니 방학 한 달 전부터 미리 약속을 잡아두고, 방학이 되면 이때다 싶어 만나는 건데...  

요며칠 기록적인 폭우에 비가 오면 외출도 번거롭겠다 싶어 연신 기상예보를 새로고침 해가며 살피던 도중, K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미안. 나 내일 못 나갈 것 같아. 딸이 기침이 심해서 병원에 데려가야 해. 그냥 너희끼리 볼래?"

방학까지 기다렸다 잡은 약속에 정작 K가 빠지게 된상황이 벌어졌다.    

특히나 K는 분위기 메이커. K가 없는 모임이라면 잠시 연기를 헤야 하나 고민도 했는데…

너도 나도 한 목소리로 “우리라도 먼저 만나자!“

그도 그럴 게 모임은 방학에 하지만, 우리의 텐션은 개학을 기다리는 초딩들과 같았다. 방학 동안 밀린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떠들 생각에 개학을 손꼽아 기다리는 초딩들.

그러니 연기나 파토는 있을 수 없는 일. 계획대로 모임을 진행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모임에 맞춰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펌까지 한 상태.

거기다 여름 내내 피부마냥 입고 있던 실내복 대신, 옷 다운 옷 좀 입어보겠다고 며칠 전부터 입고 나갈 외출복까지 정해둔 상태였는데...




모임 당일.  

깨끗하게 씻고 나와 한껏 차려입고 집을 나서려는 순간, 비 오듯 땀이 흘렀다.

폭우가 지나가 다행이다 싶었더니만 이번엔 내 몸에 비가, 아니 땀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간만에 차려입은 불편한 옷이 문제다. 아니 실은 내가 갱년기 여성인 게 더 문제다.

전에는 비록 퉁실퉁실 물렁살에 땀 좀 흘리는 몸둥아리였을 망정, 이 몸도 자비란 게 있었다.

예열이라고 해야할까, 몸의 온도가 슬슬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땀샘이 폭발했는데, (하다못해 땀이라도 흠칠 시간이라도 줬는데) 요즘은 자비고 뭐고 없다.

몸의 온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갈라치면, 그 즉시 땀샘이 터져 폭발한다.

순식간에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제일 곤란한 건 콧잔등과 턱주변, 그리고 가슴 주변으로 흐르는 땀이다.

부위가 부위인지라 그 부분이 젖으면 예외없이 옷을 갈아입어야만 한다.

일껏 차려입은 원피스가 집을 나서기도 전에 젖어버린 상황. 다시 옷을 갈아입어야만 했는데...


원피스 대신 가진 것 중 가장 시원한 소재의 티셔츠와 바지로 갈아입고, 부랴부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 나. 도보 3분 거리 버스정류장까지 가는데도, 한 번 터진 땀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흘러내렸다.

경험상 이럴 땐 '덥다, 덥다, 어쩌지?' 하면 땀이 더 난다.

포기하고 내버려두면, 어느 순간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 주기도 하고, 못돼먹은 미친 땀들이 제풀에 지쳐 잦아들기도 한다

그런데 15분 후에나 도착한다는 버스.

곧 버스만 타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땀 좀 식히리라 기대했던 나는, 아니 내 몸은 그 믿음이 처참히 짓밟히자 다시 당황한 나머지 좀전보다 두 배로 울기, 아니 땀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이때 내 눈 앞에 들어온 한 여성.

일찍 결혼했더라면 딸뻘쯤 돼 보이는 20대 초중반의 한 여성이 먼저 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무려 땀순이들은 손도 댈 수 없다는 회색 티셔츠에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렸는데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앉아있는 그녀.

이미 얼굴에 바른 파운데이션이 버터처럼 녹아 내리는 나와는 달리, 풀메이크업을 한 그녀의 얼굴은 뽀송뽀송 그 자체였다.

순간 놀랍고, 부럽고, 부럽다 못해 얄밉기까지 했는데...

이때 걸려온 남편의 전화.

주말 아침 늦잠을 자느라 내가 나간 것도 모르던 남편이 뒤늦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오늘 날씨가 얼마나 덥고 습한지, 더군다나 지금 내가 얼마나 지옥 같은지를 주절주절 떠들다, 회색티의 그녀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러자 대번에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마르지 않았어?"

헐...

사실 땀에 있어선, 나보다 남편이 더 할 말이 많긴 하다.

자고 일어나면 입었던 옷이 너덜너덜 해질만큼 잘 때도, 먹을 때도, 심지어 한 겨울에도 곧잘 땀을 흘리는 남편.

그래서일까. 그러고도 그는 자신도 한여름에 지하철에서 가디건을 걸치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부럽다는 둥, 마른 사람들은 땀도 안흘려 좋겠다는 둥, 공감인지 팩트폭격인지 모를 말들을 계속 눈치없이 늘어놨다.

남편의 말도 따지고 보면 틀린 게 없다. 그러니 화를 내기도 뭣한 상황.

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내가 흘리고 있는 이 땀을 살 때문인 걸로 해둘까, 아니면 갱년기 때문인 걸로 해둘까, 어떤 게 좀더나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 둘 중 하나, 경중을 따졌던 내가 사실 가장 웃프다.




그렇게 산 넘고 물 건너 쇼쇼쇼 (아, 옛날사람) 어렵사리 만난 나의 친구들.

아 역시 친구 밖에 없다.   

이곳저곳 몸 아픈 얘기, 먹는 약 얘기만 해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든다.  

이래서 연중행사처럼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떠들 수 있는 친구들이 제일 좋은 것 같다.

땀 때문에 도로 집으로 들어갈 뻔 한 갱년기 아줌마, 모임에 가길 참 잘 한 것 같다.

이렇게 맛있는 파전도 먹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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