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아니라 컴퓨터 전원 켜기

오늘의 한 일.

by 토보이

대체 이게 얼마만인가요?

다이어리에다가 가끔 끄적거리던 걸 제외하면, 글을 안 쓴지도 일 년이 넘어버린 것 같습니다.

틈틈이 쓸 거리들을 모아두긴 했으나, 제 때 글이 되지 못한 이야기들은 마치 식어버린 음식 같달까요. 글로 지어 브런치로 발행하자니, 다 식어버린 음식을 상에 올리는 것 같아 영 내키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브런치를 다시 열자 계획하고도 근 한 달이 지났습니다. 데스크 탑에 전원조차 켜지 않고 계획과 생각만 한 채 시간을 보낸 거죠. 요즘은 핸드폰 하나면 뭐든 가능하니, 글 쓰는 일 아니면 사실 집에 있는 데스크 탑에 전원을 켤 일이 잘 없거든요. 그러니 전원 코드 하나 꽂는다는 게 별 일이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되게 별 일인 셈이에요. 막상 컴퓨터만 켜면 브런치를 열고 브런치를 열면 뭐라도 쓰게 되는 나만의 흐름 같은 게 있긴 하지만... 맞아요. 저는 코드 꽂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사람 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나에게 내린 지령은 뭐였다?

네, 데스크 탑 컴퓨터에 전원을 꽂는 거였어요. 그리고 지금 브런치를 열고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뭘 써야할지 어떻게 써야할지 아무 생각도 없어요. 그저 손이 움직이는대로 쓰고 있달까요. 어쩌면 쓰면서 도리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지난 일 년의 시간을 되돌아볼게요.

제가 뭘 하고 살았는지 궁금해 할 사람은 거의 없을테니, 간단히만 나열해 볼게요.

25년 1,2월엔 겨울방학 한정 인근 유치원에서 급식 배식 알바를 했습니다. 그리고 4월엔 남편과 두 번째 호주 여행을 브리즈번으로 다녀왔고, 6월엔 시할머니 7월엔 시아버지의 장례를 연달아 치뤘어요. 그리고 7월 중순부터 얼마 전 26년 1월말까진 동네 유,초등 독서논술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한글과 국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12월 초엔 두 세 달 정도 준비를 해서 일본어능력시험 JLPT N1에 응시했고, 얼마 전 감격스럽게도 합격을 했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 첨언하자면, 대략 2009년 쯤 일본어능력시험 1급에 합격한 뒤 16년 만에 다시 본 시험이었는데, 갑자기 결정하고 응시를 했던터라 제법 고생을 했어요. 시간은 부족하지 머리는 전같지 않지, 돌아서면 까먹는 마법을 매일매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제법 노력도 한 결과, 썩 좋은 점수는 아니지만 합격이라는 좋은 결과는 얻었네요.

이렇게만 놓고 보면 대단치는 않아도 나름 잘 산 일 년 같지 않나요?


그런데 26년의 첫 시작은 어땠는줄 아세요?

약 석 달 정도 한 공부도 공부라고, 그 여파로 목 디스크가 찢어졌습니다. 새해 시작을 목디스크와 함께, 병원 치료와 재활을 겸하며 학원 일을 했죠. 그런데 아이들 책상 높이에 맞춰 늘 내려다보며 일을 해서일까, 도무지 차도가 없었어요. 그러다 딱 죽겠다 싶은 어느 날, 홧김(?)에 학원까지 그만둬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일곱 살 아이가 뭐 얼마나 대단히 나를 괴롭혔다고... 말을 안 들으니까 아이이고, 아직 어리니 그럴 수도 있었던 건데...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는 아이에게 바짝 약이 올라, 수업을 마친 뒤 그 길로 나가 원장님께 그만두겠다고 말해버렸습니다. 이유는 물론 목디스크의 고통와 애로, 홧김이었다고는 해도 정중하게 의사를 전달했어요. 그리곤 새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꾸역꾸역 수업을 이어가다, 1월 말에 학원 일을 모두 정리했는데...


학원은 원장님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집 근처라 다니기도 수월해서 큰 탈만 없으면 계속 하려고 했던 일이라, 새해 벽두부터 실직은 엄청난 변수에요.

이제 뭘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사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시작한 게 브런치, 글쓰기 입니다.

학원 일과 가사를 병행하느라 시간이 없었다는 건 핑계고, 굳이 글을 쓰지 않아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학원이 나에게 준 면죄부. 그런데 이제 핑계조차 댈 수 없을만큼 시간이 남아돌고, 당장 글을 쓰는 것밖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요.

그래서 무엇을 쓸지 어떻게 써야할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덜렁 브런치만 다시 열었습니다. 딱히 새로워진 게 없으니 리뉴얼 오픈은 가당치도 않구요, 불 꺼진 채 비워져있던 가게에 어렵게(?) 들어가 불만 다시 켰습니다.

다시 불을 켜기까지 이리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 줄은...

그러니 지나가다 다시 불켜진 가게가 궁금하시다면, 한 번 들어와 둘러봐주세요.


어쨌든 오늘의 나는 컴퓨터 전원 켜기 클리어! 거기다 가게 (브런치)에 불까지 켰으니, 근래 들어 스스로 이만큼 대견한 하루가 또 없네요. ^^;


이상 스스로에게 말도 안되게 관대하고 연민도 많은 한 인간의 오늘의 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내가 한 일.


글쓰기.... 가 아니라, 컴퓨터에 전원 꽂기.


-내일 내가 할 일.


운동... 이 아니라, 아파트 지하 헬스장 방문하기. (사실은 오늘 할 일이었으나, 내일의 나에게 토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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