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에 느껴진 청국장의 텁텁함은 기분 탓이었을까?
오랜만에 엄마가 청국장이 먹고 싶었나 보다. 내가 제안한 많은 메뉴를 마다하고 계속 청국장은 어떠냐고 되묻는 것을 보니 틀림없다. 옛날부터 엄마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고 은근히 언질을 주었다. '엄마가 이게 먹고 싶은가 보구나'라고 내가 눈치챌 수 있도록. 오늘도 그런 엄마의 은근한 언질에 스스로 눈치챘다. 엄마가 청국장이 먹고 싶은가 보구나 하고. 마침 예전에 사다 놓은 냉동 청국장이 남아있었다. 냉동 청국장은 반드시 상온에서 해동시켜야 해서 얼른 밖에 내놓았다. 겨울이라 잘 녹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제시간에 맞게 녹아주길 바라며.
청국장이 어느 정도 녹았다 싶을 때 재료 준비를 시작했다. 감자 한 개와 양파 반 개, 표고버섯은 큰 걸로 하나, 대파도 조금. 재료들을 한 번씩 찬물에 헹궈주고 감자, 양파는 네모나게, 대파는 어슷하게 썰어주었다. 표고버섯은 모양대로 썰까, 네모나게 썰까 고민하다가 감자와 양파의 모양에 맞춰 네모나게 썰었다. 요리를 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니 표고버섯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특히 된장찌개와 청국장을 만들 때는 빠질 수 없는 재료다. 쫄깃한 식감도 줄 수 있고 국물의 감칠맛도 더해줄 수 있으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에 만드는 청국장에서도 쫄깃한 식감과 맛있는 국물을 내주길 바라며 표고버섯을 열심히 썰었다.
보글보글. 청국장이 맛있게 끓었다. 그러고 보니 이 청국장은 어떤 명인이 만든 청국장이라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구수한 맛은 있는데 냄새는 별로 안 난다니. 명인의 솜씨는 다르구나. 감탄하면서 마지막으로 간을 봤다. 조금 싱거운 것 같아 소금 간을 더하고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수저를 놓고, 함께 먹을 반찬을 놓고, 마지막으로 따끈한 밥과 갓 만들어진 청국장을 상에 놓았다.
매일 함께 밥을 먹다 보니 할 말이 없을 때가 종종 있어,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는 언제나 라디오를 켜놓는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여러 사연을 듣다 보면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라디오에서 어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아들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얻은 아들이 그동안 자신으로 인해 고생한 어머니에게 바치는 편지 같은 느낌이었다. 사연을 다 듣고 나서 엄마가 말했다.
"키운 보람이 있네. 저 집 엄마는 좋겠어."
엄마는 TV나 라디오에서 성공한 젊은 사람들이 나오면 항상 그런 말을 했다. 저 집 부모는 좋겠다. 저 집 엄마는 얼마나 좋겠니.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가? 아닌 걸 알면서도 어쩐지 입안의 청국장이 텁텁해졌다.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괜히 심술이 나서 퉁명스레 대꾸했다.
"왜요? 부러우세요? 엄마 자식은 별로라서?"
엄마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뱉은 말을 후회했다. 안 그래도 내가 회사를 그만둔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엄마인데. 알면서 왜 그랬지? 괜한 열등감에 엄마에게 함부로 말하고 말았다. 정적 속에서 밥을 마저 먹고 뒷정리를 한 후 방으로 들어왔다. 머릿속은 후회로 가득했다. 아 진짜 왜 그랬지? 나도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나? 떠오르는 생각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을 때,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 뜻 아니었어. 정말 미안해."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엄마에게 사과까지 하게 만들다니. 거듭 미안하다는 엄마에게 내가 더 미안하다고 했다. 집에서 쉬다 보니 좀 불안해져서 그랬던 것 같다고, 괜한 심술을 부려 미안하다고.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조심히 방문을 닫고 나갔다. 나가면서도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아픈 몸을 추스르기도 힘든 엄마에게 내 눈치까지 보게 만들다니. 이게 다 청국장 때문이라고 입안이 텁텁해서 그렇다고 괜히 청국장 탓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