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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 Jan 20. 2023

빨간 맛 무두부조림과 빨간 원피스

오래된 엄마의 빨간 원피스

 인스타그램에는 다양한 레시피가 참 많다. 레시피 검색을 계속하다 보면 연관 피드에서 또 새로운 레시피를 띄워줘서 저장한 레시피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볼까 생각하다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는 내 계정에 저장된 것들을 한번 둘러본다. 마침 눈에 띄는 레시피가 하나 있었다. 한살림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1월 조합원 추천 채식밥상. 그중에 무두부조림이 있었다. 엄마는 무 조림을 아주 좋아해서 식당에 반찬으로 무 조림이 나오면 두 번 이상은 리필해 먹는다. 그리고 겨울 무는 영양가가 높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도 있고 하니, 무두부조림을 하기로 결정했다.


 나와있는 레시피대로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다진 마늘, 후추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주고 무와 두부를 적당한 두께로 썰어주었다. 무를 썰 때 항상 느끼는 건데 일정한 두께로 써는 것이 좀 어렵다. 하다 보면 이상하게 위쪽과 아래쪽의 두께가 달라진다. 그래서 무를 썰 때면 최대한 집중을 한다. 이번에는 괜찮게 썰어진 것 같아 내심 만족스러웠다. 파는 조금 두껍게 어슷 썰고 두부는 노릇하게 부쳐주었다. 정수물에 3~4시간 정도 우려낸 다시마 채수에 무를 넣고 무가 익을 때까지 끓인 다음 두부, 양념장, 파를 넣고 푹 조렸다. 중 약불에 두고 중간중간 눌어붙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면서.



 육수가 너무 졸아들어 버렸고, 내 입맛에는 약간 싱거워서 조금 아쉬웠다. 중간에 간을 봤는데 너무 짜서 양념장을 좀 덜어냈더니 싱거워진 모양이다. 다행히 엄마 입에는 잘 맞았는지 맛있게 잘 먹었다. 다음에 다시 도전해 봐야지. 다음번에는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막 끝내려는데 안방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났다. 엄마가 방 정리를 하나? 마지막으로 싱크대의 물기를 닦고 고무장갑을 걸어놓은 다음, 안방으로 향했다. 혹시가 방 정리 중이면 도와줘야겠다 싶은 마음에 안방 문을 열려는데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문 앞에는 빨간 원피스와 검은 숄을 두른 엄마가 서 있었다.


"이 옷 기억나? 예전에 자주 입던 옷이었는데. 입어보니까 예전보다 더 잘 맞네. 안 버리길 잘했다."


 기억을 못 할 리가 없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옷이었으니까. 약간 어두운 빨간색에 목과 소매 부분에 검은색 장식의 포인트가 있는, 20년도 더 된 원피스였다. 바깥에 두른 퍼 소재의 검은색 숄도 10년은 된 옷이었다. 워낙 엄마가 옷 관리를 잘해서 오래된 옷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새로 산 옷을 자랑하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엄마의 표정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맞아. 엄마는 꾸미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덧 4년째 이어진 투병생활로 인해 잊고 있었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는 참관 수업일이니, 어머니회니, 온갖 잡다한 일로 학교에서 엄마들을 엄청 불러댔다. 당시 엄마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바쁜 와중에도 학교에서 부르면 꼭 와주었다. 세련된 원피스에 예쁜 구두를 신고 멋있는 가방과 함께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한 엄마는 친구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누구야? 너네 엄마야?"

"진짜 안 닮았다. 진짜 너네 엄마 맞아?"

"혹시 새엄마야?"


 친구도 아닌 것들까지 나에게 달려들어 질문을 쏟아냈다. 초등학생들 답게 뇌를 거치지 않은 질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 우리 엄마다 이것들아! 엄청 예쁘지? 엄청 세련됐지?' 재수 없어 보일까 봐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속으로 생각만 했다.


 오랜만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엄마를 보며, 엄마도 나도 추억에 젖었다. 그리고 아직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어느 미래를 그려봤다. 지금처럼 예쁜 옷을 입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서 나와 함께 걷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멀리 있는 식당도 가고 간 김에 분위기 있는 카페도 들러야지. 거기서 사진도 찍고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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