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초 Jan 12. 2023

응급실에서 먹은 라면의 기억

병원에서 먹었던 라면

 우리 집 사람들은 라면을 좋아한다. 이제는 과거형이다. 좋아했다. 반찬이 없을 때, 밥 하기 귀찮을 때, 간단하게 무언가를 먹고 싶을 때 우리 가족은 라면을 먹었다. 과거형이 된 이유는 건강 때문이다. 엄마도 큰 병을 앓고 있고, 아빠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혈당 수치가 높아졌다. 그리고 나도 혈당 수치와 콜레스테롤이 높다. 그래서 라면보다는 쌀국수나 메밀면으로 만든 국수를 먹는다. 그래도 정 먹고 싶다고 하면 야채라면을 끓여 먹는다.


 엄마는 가끔가다 아주 입맛이 없을 때, 라면을 찾는다. 오늘은 나도 간단하게 먹고 싶기도 했고 어쩐지 라면이 먹고 싶기도 해서 야채라면을 끓였다. 집에 있는 감자, 당근, 애호박, 양파, 표고버섯 같은 것들을 모두 채 썰고 물에 5분 정도 끓인 다음, 라면 수프를 넣는다. 면을 넣고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4분 정도 끓이면 완성이다. 요즘 엄마가 가장 즐겨 먹는 반찬인 순무김치를 접시에 담고, 야채 라면을 그릇에 담아냈다. 라면을 끓이다 보니 문득 얼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벌써 작년의 일이 된 기억이다.


 작년 8월, 회사에서 바쁘게 일하던 중에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응급실에 가게 되었으니 지금 바로 병원으로 와달라는 전화였다. 여러 차례 병원에 방문하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응급실에 간 적은 없었는데. 두려운 마음이 덜컥 들었다. 빠르게 전화를 끊고 상사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병원으로 향했다. 갑자기 응급실이라니 무슨 일이지? 심각한 건가? 뭐 챙겨갈 건 없나? 가는 동안 생각이 뒤엉켰다. 그런 와중에도 몸은 로봇처럼 움직여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들어서자 힘없이 누워있는 엄마와 곁에 앉아있는 아빠가 보였다. 엄마는 힘이 없는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눈만 마주쳐 인사했다. 며칠간 엄마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는데, 그날 아침 몸이 심하게 붓기까지 해서 응급실에 왔다고 했다. 그리고 몇 주간 입원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아빠의 말을 들으며 대답은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가서 밥 먹고 와. 그동안 아빠가 엄마 옆에 있을 테니까."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으니, 일단 밥을 먹고 오라고 아빠가 말했다. 지하 푸드코트에서 라면을 주문했다. 제일 빨리 나오고 빨리 먹을 수 있는 것을 골랐다. 라면을 한입 먹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언젠가 엄마는 그런 말을 했었다. 모두가 떠난 집에서 혼자 아픔을 견디는 것이 힘들다고. 그 마음을 들었으면서도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엄마의 아픔과 외로움을 외면했다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나는 얼마나 후회하려고 엄마를 이렇게 내버려 두었을까?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는데.


 그다음 날,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내가 눈을 감는 날까지 엄마는 내 옆에 있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까지, 엄마와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가끔은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새해를 맞이하며 표고버섯 떡국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