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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 Jan 04. 2023

새해를 맞이하며 표고버섯 떡국을

어느 절에서 엄마가 먹었던 표고버섯 떡국

  2023년 새해가 밝았다. 대부분의 한국 가정이 그렇듯 우리 집도 한 해의 시작인 1월 1일 아침에는 무조건 떡국을 먹는다. 원래는 사골육수나 멸치육수에 떡과 파를 넣고 김가루를 뿌려 먹었는데, 작년부터 표고버섯 떡국을 먹기 시작했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표고버섯을 얇게 썰고 멸치육수와 푹 끓여낸 후 파와 떡을 넣고 마지막으로 계란을 풀어 넣어준다. 간은 소금으로만 한다. 멸치육수와 표고버섯이 감칠맛을 내줘서 소금으로 간을 하면 충분하다. 



 2019년 12월. 그러니까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나서부터 엄마와 나는 한 절에 다녔다. 용인에 있는 수월사라는 곳이었다. 누군가의 소개로 알게 된 곳이었는데, 용인의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절은 엄마에게 좋은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연세가 많으신 스님은 엄마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큰 병을 얻고 마음을 기댈 곳이 필요했던 엄마에게 알맞은 곳이었다. 표고버섯 떡국을 처음 먹어본 것은 이 절에서였다. 


 보통 절에 갈 때는 늦어도 9시를 넘기지 않았는데, 그날은 늦잠을 잔 데다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 보니 10시가 훌쩍 넘었다. 차도 좀 막혀서 절에 도착하니 2시가 좀 안 된 시간이었다. 스님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법당으로 가려고 스님의 방을 먼저 찾았는데 늦은 시간에 점심을 드시고 계셨다. 스님의 제안으로 염치없지만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때 먹었던 것이 표고버섯 떡국이었다. 육수나 다른 재료도 없이 표고버섯과 떡만을 맹물에 푹 끓여내고 소금으로 간을 한 떡국이었다. 


 배가 고팠던 건지 스님의 마음씨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맛있었다. 집에 와서 몇 번 흉내 내봤지만 그 맛이 다시 느껴지지는 않았다. 간단하게 끓인 것 같았는데 왜 같은 맛이 나지 않을까? 결국 표고버섯과 떡만 넣어 끓이는 것은 포기하고 멸치육수와 파, 계란을 추가해 끓이고 있다. 새해 아침에 표고버섯 떡국을 끓이고 있자니 문득 스님이 생각났다. 그리고 스님이 엄마에게 해줬던 마지막 말도.


"보살님 건강은 금방 회복될 겁니다. 강한 분이어서 금방 이겨낼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엄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절에 가지 못했는데, 스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작년 가을쯤이었다. 고통스럽지 않게 자는 듯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스님의 말씀대로 엄마는 잘 이겨내고 있다. 위기의 순간들도 있었지만 아빠와 나와 함께 잘 이겨내 왔다.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길고 지루한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반드시 끝나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날이 오면 그때는 그런 일도 있었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할 날도 오겠지.


 2022년을 보내고 2023년을 맞이하며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소원을 빌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다들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소원을 빌며 새해의 목표도 세워봤다. 엄마가 좋아했던 광릉수목원에 다시 가보는 것.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서 맛있는 것도 먹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숲길도 걷고, 근처 맛집에서 밥도 먹고 싶다. 꼭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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