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 화요일마다 엄마는 검진을 받는다. 피검사와 CT사진을 통해 현재 몸 상태가 어떤지, 다른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암이 얼마나 사라졌는지, 더 커지지는 않았는지도 함께 확인한다. 그리고 이 검사를 바탕으로 항암치료를 계속해도 될지 여부를 결정한다. 만약 결과가 좋지 않으면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다른 치료를 먼저 시작한다. 몸이 전체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 지독한 항암을 견딜 수 있을 테니. 검사결과는 언제나 좋다. 담당의사는 항상 몸이 아주 좋은 상태이니 계속해서 치료를 진행해도 좋다는 이야기만 한다. 의사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것이다. 좋으니까 좋다고 말하는 것이겠지만, 정말 좋다면 이 치료의 끝은 언제쯤 일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평소 의사와의 면담 시간에는 내가 함께 들어가는데 오늘은 아빠가 직접 왔다. 담당의사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아마 아빠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암은 길고 지루한 싸움이라고 하지만 기약도 없는 싸움이 계속된다면 엄마는 지쳐버릴 것이다. 겨우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린 체력이 금방 떨어져 버릴 수도 있고, 치료의 의지가 꺾여버릴 수도 있다. 이제 햇수로 5년 차에 접어들었으니 현재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암이 얼마나 작아진 것인지, 아빠는 그것을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의사와 면담 후 나온 엄마와 아빠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결과가 좋지 않았나? 물어보고 싶었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짐을 챙겨서 엄마와 아빠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병원을 나와 주차장에 있는 차로 향할 때까지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차에 타고 아빠가 시동을 걸려는데 엄마가 불쑥 말을 꺼냈다.
"이렇게 치료받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냥 연명치료인 것 같아."
차 안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아니, 차 안의 온도가 아니라 내 마음의 온도가 차가워진 것 같다. 차가운 공기를 뚫고 애써 밝은 목소리로 결과가 좋지 않았냐고 물으니, 지난겨울부터 지금까지 암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의사는 약을 적게 쓰고 있는데 크기가 그대로인 것은 약이 잘 듣고 있다는 뜻이니 걱정 말라고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힘들게 치료를 받고 있는데 차도가 없다면 의지가 꺾인다. 표정 없는 엄마의 얼굴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엄마의 기분을 전환시켜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때 마침 얼마 전에 지인에게 받아온 원추리와 민들레, 세발나물이 생각났다. 봄에 먹는 봄나물만큼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음식이 또 있을까?
콩나물이나 숙주나물은 많이 해봤지만 원추리와 민들레와 세발나물은 처음이라 블로그 레시피의 도움을 받았다. 레시피를 참고하여 원추리는 고추장 양념, 민들레는 된장 양념, 세발나물은 간장과 고춧가루 양념을 사용해서 무치기로 했다. 흙이 묻은 원추리와 민들레를 깨끗한 물에 열심히 헹구고 세발나물은 흐르는 물에 씻어주고 또 순서대로 데쳐주고 물기를 짜주고. 과정이 번거로웠지만 하나씩 완성해 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엄마를 기쁘게 해 주려는 요리에 오히려 내가 더 신난 느낌이었다.
세 가지나물을 만드는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처음 만들어보는 것들이라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다. 내 입맛에는 잘 맞았는데 엄마 입맛에는 어떠려나. 걱정을 하며 식탁에 올려놓았다. 나물을 본 엄마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원추리와 민들레가 엄마의 추억을 되살려주었나 보다. 예전에 자주 먹었던 나물이라며,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았다. 엄마 입맛에도 잘 맞았는지 밥 한 그릇을 모두 비웠다. 보통 때 같으면 항상 한 두 숟가락을 남겼는데. 봄나물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났는데도 마음이 무거웠다. '연명치료'라는 엄마의 말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주지 못한 것이 자꾸 생각났다. 하지만 그 순간 어떤 말로 엄마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을까? 지금의 엄마에게는 말보다는 건강하고 맛있는 밥이 더욱 힘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내일은 더 좋은 밥상을 차려줘야지. 그래서 내일은 뭘 먹을까?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