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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Apr 18. 2020

속단과 우유부단

2020.04.17

"이전처럼은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다투어 이야기하는 많은 전문가들의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따뜻한 봄이 오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멸할 것이라고 예측했었고, 스웨덴은 집단면역 즉, 의도적 방치로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예단했다. 그 외에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방역 대처에 대해서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다가 뒤늦게 강수를 내놓고 있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싱가포르는 방역 모범 국중 하나였지만 최근 규제를 완화한 것이 화근이 되어 코로나 바이러스의 씨불이 다시 강하게 타기 시작했고, 일본의 아베 총리는 마치 오랫동안 참았던 사우나에서 튀어나오는 듯 위기를 경고한다. 


담당자와 전문가들은 신속한 결정에 대한 압박을 받으면서도 속단하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할 테지만 결과만으로 평가되는 오늘날의 사회가 아마 야속할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한 개인을 넘어서 좌와 우로 나눠 대립하고 있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정책적인 방향은 결국 국민 다수의 의지대로 나아가지만 진보와 보수는 그 때와 시간에 대해서 마지막까지 의견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4월 15일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승이 무색하게 높은 참여율로 치러졌다. 전체 의석의 5분의 3을 넘는 '슈퍼 정당', '공룡 여당'등의 여러 수식어를 달고 새로운 대한민국 국회가 탄생했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날 선 비판 중 하나는 보수가 보수의 위기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주류의 자만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지지부진 결단하지 못한 보수가 골든아워를 넘긴 것 같다.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에서 전복된 여객선 세월호 사고로 배운 우유부단의 트라우마를 되새김해 본다. 


"이전처럼은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지난 6년 동안 한국인이 곱씹어온 문장이다. 속단하는 것도, 신중함이라는 이름의 우유부단도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말하자면 선거에서 잘못된 표를 행사하는 것과 표를 아예 행사하지 않는 것 모두 그에 따른 막중한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는 단순한 해난 사고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의 말처럼 관련 경찰과 공무원 처벌하고 억울한 학생들 위령비 세우고 학교 지원하고 끝났다면, 오늘 우리 앞에 놓일 코로나 바이러스 재난의 결과를 나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속절없이, 겹겹이 쌓여가는 시신 앞에서 서로의 무기력을 달랠 뿐인 그 날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개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단체는 실격이다. 사랑의 반대말이 증오와 분노가 아닌 무관심이라 했던가. 한국은 불감의 세상 속에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로 분명히 약진했다. 타인의 고통에 더 열렬히 반응한다. 통칭 N번방 사건의 피의자들이 하나 둘 세상에 공개된다. 그런데 주범인 조주빈의 공범으로 지목되는 인물들이 연일 10대의 미성년자들이다. 여론은 그들의 신상도 만천하에 공개하길 원하고, 일각에선 재판 이전에 낙인을 찍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 


어느 뉴스에선 공고한 집권당인 민주당이 자만하지 않겠다며 머리를 숙이고, 어느 뉴스에선 포토라인에 선 조주빈의 오른팔 '부따', 강훈이 고개를 숙이며 연신 '죄송합니다'를 반복한다. 우리가 내린 결정들은 반드시 다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 어느 때보다도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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