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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Mar 21. 2020

코로나라는 이름의 리바이어던

판데믹의 얼굴

머지않아 우리는 전체 인구의 70%까지 코로나에 감염된다. 어느 개인의 아니꼬운 저주의 말이 아닌, 마크 립시치 하버드대 전염병학 교수의 예측이다. 전문가들의 대처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완전한 사멸이 아닌, 우리네 사회가 마비되지 않도록 확산을 늦추는 데에 집중할 따름이다. 

2월 26일 남극을 뺀 모든 대륙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고 수준의 경보 단계인 판데믹 선포를 망설이는 동안, CNN이 3월 9일 판데믹의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최초로 판데믹을 선포하면서 개개인의 텁텁한 절망감과 음울한 계절 같은 위기가 산업과 사회 곳곳에 드리워졌다.

그러나 작년 말 시발한 코로나바이러스는 차분히 종착역으로 향해간다. WHO의 판데믹 선포는 1968년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신종플루)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다.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은 "코로나가 역사상 처음으로 통제될 수 있는 첫 판데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바이러스의 결국은 '공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갑갑한 마스크는 제쳐두고 겨울이면 찾아오는 게 신종플루지 푸념하며 더 이상 대수롭지 않게 일상을 살아갈 테다. 흉흉하고 어수선한 와중에 이놈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엄청난 위험을 알리거나 위기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경종은 아니다. 

글을 적는 3월 12일 저녁 베를린 필하모닉 홀이 실황 관람을 취소하고 무료로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들으며, 전자현미경 없이는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이 바이러스가 우리 삶터의 지축을 뒤흔드는 동안 보이는 변화들을 통해 이 현상의 본질을 파악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근본적인 의미들이 다시 한번 영원히 눈에 띄지 않기 전에 게으른 엉덩이를 의자에 앉혀 적어 내려간다.


3월 4일, 한겨레 '세상 읽기'를 통해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는 "세상에 나쁜 바이러스는 없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신영전 교수는 에볼라를 퍼뜨린 전례가 있는 박쥐는(사스도 박쥐에게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원래 100종 이상의 바이러스를 품고 있는데, 인간에 의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대량 생산에 초점을 맞춘 공장식 발전과 쉽고 빠른 대규모 국경이동 등의 본질적인 바이러스 전파 경로를 지적하며 어수선한 현장을 정리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판데믹이라는 현상이 닥쳐온 우리의 일상, 우리의 몸이다.

The Face of Pandemic  © Yolanta C. Siu

세상이 마치 하나의 몸 덩이처럼 빠르게 퍼져나가는 코로나바이러스는 1651년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을 상기시킨다. 구약 성경 '욥기'에 나오는 지상 최강의 괴이한 유기체 리바이어던은 본래 혼돈을 야기하는 가장 강력한 동물이다. 그러나 홉스는 통치와 안전을 이유로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막강한 권력으로 표현했는데, 그의 책 표지에 Abraham Bosse가 그린 리바이어던 몸속을 확대해보면 시민들의 얼굴과 몸체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되어 통일되었을 때 그것을 커먼웰스(Commonwealth), 라틴어로는 키비타스(Civitas)라고 한다. 이리하여 위대한 리바이어던이 탄생한다. 아니, 좀 더 경건하게 말하자면 영원무궁한 하나님(immortal God)의 가호 아래, 우리의 평화와 방위를 보장하는 지상의 신(mortal God)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기적 존재 인간이 자기 보호를 최우선시하고, 그들의 보호를 위해 강력한 힘의 형체를 정하는데, 이 계약을 유지하는 강력한 대리인은 지상의 신으로 군림하는 국가이다. 오해하지 않을 것은, 사회나 국가라는 것은 개념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가 아닐뿐더러 그러한 허상을 만들어낸 것이 시민들이라는 점이다. 


홉스의 사회계약론과 국가의 관계는 미국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의 본산이다. 2017년 3월의 한국은 대통령 탄핵을 통해 국가의 주인이 시민이라는 민주주의의 구조를 만인에게 상기시킨 바 있다. 개개인이 리바이어던의 손을 휘두른 짜릿하고도 섬뜩한 현실이었다.     

오늘날의 리바이어던은 그 규모가 국가 단위로 머무르지 않는다. 전 세계의 사람, 기업, 정부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정치, 경제, 문화 모든 것을 뒤섞으며 더욱 복잡한 유기체로 성장했다. 운송기술과 미디어가 더욱 매끄럽게 이 과정을 주도했는데, 덕분에 개인이라는 요소가 커질 수 있는 가장 최대의 크기로 성장 중이다. 중국 우환에서 발생한 Covid-19가 유럽 땅 바티칸 시국까지 전염시킬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현상은 우리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삶의 한 단면이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과 이로움 속에, 그러니까 우리가 구매한 제품들의 설명서를 잘 읽어보지 않은 까닭에 패키지 속에 포함된 바이러스는 잘 몰랐다. 환불이 불가능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 두려울 것 없었던 우리의 편리한 일상이 드디어 면역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국가들의 얼굴과 몸이 뒤엉킨 거대 공동체가 겪는 이 성장통이 참 아프다. 세계 곳곳에 고개를 치켜드는 인종차별과 사회불안을 키우는 이기주의, 가난해서 치료받지 못하는 음지와 의료비용이 비싸서 검사를 못 하는 무늬만 선진국이 욱신거린다. 이웃 국가들과 형제 국가들이 도마뱀 꼬리 자르듯 모두 국경을 폐쇄하는가 하면, 기회주의 집단은 이틈을 비집고 비즈니스 전략들을 전개한다. 


나는 감염자가 아니다. 그러나 이 분열의 고통이 내게도 선명하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더불어 관계를 맺었음에도 스스로를 다시 고립시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 자가격리와 개인위생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운동으로 면역력을 키우는 것 만으로는 판데믹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바이러스는 언제든 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취약한 곳부터 얄궂게 파고들어 늘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Mom where is the Virus?" © Yolanta C. Siu


리바이어던에서 토마스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정의했다. 이때 평화를 위해서 자연 상태의 자유까지 포기하면서 사회계약 상태를 갖게 되는 것이 그가 정의한 인간이다. 그러나 이 건조하고 예리한 통찰이 바이러스 앞에서 무슨 소용이랴. 건조 파스타? 두루마리 휴지? 무엇을 위한 투쟁이란 말인가. 다만, 오늘 우리는 만인이라는 단어가 정의하는 개인, 집단, 사회, 국가, 세계 속의 각자의 얼굴을 주목해야 한다. 개인위생이 공중보건의 핵심이듯, 만인의 건강이 개인의 건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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