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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Feb 26. 2020

Regain(3)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Regain

1. 동사 (특히 능력·특질 등을) 되찾다[회복하다]

2. 동사 문예체 (떠났던 장소로) 되돌아오다

르완다를 다시 찾아오기까지 꼬박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수도 키갈리 외국인학교의 교사 말라(Mala)는 다시 찾은 르완다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녀는 아프리카 동부에 모리셔스 섬나라 출신으로, 영어와 프랑스어 모두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2년여간의 단원 생활 동안 나의 프랑스어 선생님이었을 뿐 아니라, 르완다 이주민 선배로서 외국인의 시선으로 르완다를 오랫동안 관찰하며 얻은 정보들과 가감 없는 조언들을 아낌없이
 나누어준 고마운 은사 중 한 명이다.  


르완다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식당으로 자리매김한 INKA(소) STEAK HOUSE에서 말라와 그의 입양딸 줄리아(Julia)와 함께 만났다. 줄리아는 당시 KOICA 동료들과의 연으로 포항 소재의 한동대학교로 진학했고 졸업 후 취직 전에 잠시 르완다를 들린 참이었다. 말라는 십몇 년의 르완다 생활을 이제 막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에는 침대 하나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가구가 팔려나간 상태였다. 우리는 르완다 안팎에서의 지난 세월을 쉼 없이 웃고 아쉬워하며 이야기했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그날을 벌써 그리워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수많은 대화들 중에 가벼운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내 맴돌기 시작했다. 


"어때. 르완다가 좀 바뀐 것 같아?"


나는 몇몇 새로 들어선 빌딩, 멋진 서비스와 식재료가 수입되는 레스토랑, 많이 심해진 교통체증, 감당하기 힘든 매연, 사람들의 무표정함 등이 떠올랐지만 과거의 르완다는 무엇이고 현재의 르완다는 또 무엇인지, 뭐가 도대체 어때야 하는 건지 하는 질문이 질문의 꼬리를 물고 늘어져 얼른 어물쩡 말을 돌렸다. 그날부터 공허한 르완다의 마천루에서 아름다운 언덕들을 바라보는 느낌만이 지배적이고 갑자기 생겨난 거리감이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2013년 4월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작은 소동에 휘말린 적이 있는데 얌전한 주민들이 모두 내게 달려들어 르완다에서 썩 꺼지라는 말을 돌덩이처럼 던졌을 때, 이방인이라는 얄궂은 정체성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기억이 불쑥 다시 찾아왔다.


"자네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 생각하나? 평생 동안이나 추방당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모르나? 얌도 자식까지도 모든 것을 잃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난 한때 아내가 여섯이었지. 지금은 왼쪽과 오른쪽도 구별 못 하는 저 여자 아이밖에 남지 않았지. 내가 아이들을, 내 젊고 팔팔했던 시절에 낳은 아이들을 몇이나 땅에 묻었는지 아는가? 스물둘이야. 난 목을 매지 않고 아직도 살아 있네. 자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딸 아케우니는 쌍둥이를 몇이나 낳고 버렸는지 물어보게나. 여자들이 죽으면서 부르는 노래를 들은 적 있는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좋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의 주인공 오콩고가 평생을 재물도 권력도 명예도 없었던, 그저 술독에 빠져 사는 게으름뱅이로 묘사된 그의 아버지 우노카처럼 살지 않기 위해, 어떤 성취감에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치고도 끝내 자신의 그 적극성이 낳은 공격성으로 말미암은 실수로 마을에서 추방당하고 고통 속에 살아가던 때에 그에게 외삼촌이 전한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르완다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었다. 내가 계획한 발전이나 변화라는 것에는 어떤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내게 익숙한 '발전된' 도시 모습에 좀 더 가까워진 르완다는 너무도 낯설었다.


단지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의 부주의함은 그 격렬한 열정만큼이나 극단적인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더 좋은 것'이라는 불완전한 신념으로 르완다를 '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확히 누구를 어떻게 도왔고 그것의 결과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 시절 르완다에서 시작된 수많은 정책과 운동들은 지금 르완다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했을까? 벅찬 마음으로 일하던 무중구(외국인)는 전부 어디에 있나. 이런 씁쓸한 상상들은 아체베의 소설 부분 부분을 만나 단호하고 단단했던 주인공 오콩고가 그랬듯, 과거의 영광을 푸석한 기억으로 부수어 버렸다.  


편협한 이방인의 눈에는 그들의 관혼상제나 토착신앙이 오늘날 과학적 사실 여부와 효율성에 빗대어 늘 괄시되어 왔지만, 그 무엇 하나 경험을 토대로 한 우리의 말과 글로 온전히 설명되거나 전달되는 정보가 없다. 반복되는 정치 개입으로 사회 체제와 가치관은 반복 전복하며 붕괴했고, 아프리카의 전통과 가치는 기억되지 않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파괴되어왔다. 마침내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찬 개인의 가치관마저 부서저 내리고, 평화로운 키갈리의 풍광이 아무 소음도 소리도 내지 않는 죽은 숲처럼 느껴졌다. 


오콩고가 7년의 추방이 끝나고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갈 때에는 서구 사회가 이미 뿌리내린 뒤였다. 부족의 오래된 토착신앙 대신에 기독교가, 이미 두개의 칭호를 얻은 부족내 자신의 영향력은 서구식의 행정 시스템이 대신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위협받을 때에도 오콩고는 더 격정적으로 저항했었다. 


"우리 부족은 더 이상 하나로 뭉쳐 행동하지 않네. 우리를 함께 묶어 두었던 것들에 칼을 꽂으니 우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네."


강함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던 오콩고가 마지막으로 무너지는 순간은 이 때 였다. 자기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그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변화를 끝내 거절한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겼던 전통과 문화가 흔들렸을 때에도 오콩고는 흔들리지 않았다. 뿌리깊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도 그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오직 인간과 삶 그것을 잇고 있는 관계가 부서졌을 때, 모든 것이 부서져 내린 것이다. 


나를 흔들고 있는 것도 관계였다. 르완다 자체만도 아닌 나 스스로의 어떠함도 아닌 그 것들 사이의 관계. 무엇이 르완다를 더욱 르완다답게 만들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걸까.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 서문에 적힌 W. B. 예이츠의 시 [재림]과 언젠가 아체베가 인터뷰에서 인용했던 자신의 고향 이보 사람들의 말을 나란히 곱씹어 본다.  모든 것이 완벽히 부서지고 나면, 모든 것이 선명해질까.


돌고 돌아 더욱 넓은 동심원을 그려 나가

매는 주인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중심은 힘을 잃어,

그저 혼돈만이 세상에 풀어헤쳐진다.


"Wherever something stands, something else will stand beside it" 




사진 : Yolanta C Siu (www.yolantasi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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