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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Feb 24. 2020

Regain(2)

겪어온 길, 걸어갈 길

Regain

1. 동사 (특히 능력·특질 등을) 되찾다[회복하다]

2. 동사 문예체 (떠났던 장소로) 되돌아오다



매년 4월이 되면, 르완다 전역에는 'Kwibuka(기억하다)'라는 제노사이드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게시되기 시작한다. 1994 100 명의 목숨을 빼앗은 제노사이드와 같은 끔찍한 재앙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Remeber. Unite. Renew'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100 동안 진행돼온 추모 행사는 올해로 26주기를 맞은 전통이 되었다. 그날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르완다는 끊임없이 그때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제국주의 시대 이후 퍼지기 시작한 출처가 불분명한 말이지만 비유적으로 많은 상황에 인용되고 있으니 그 말의 가치는 적어도 매우 진실된 것 같다. 오늘은 분명 어제까지의 종합이다. 과거에 기대지 않고 서있을 수 있는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Motherland farm in Huye, Rwanda

그냥 서있을 뿐 아니라, 우리는 감히 그 기억을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피로 얼룩진 천 개의 언덕 위에서 이들의 삶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회복과 극복의 삶으로 더 힘차게 전진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55개국 중 르완다는 경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며, 무상 의료 서비스를 비롯한 다양한 복지가 제법 튼튼하게 시범된다. 여성 장관이 내각의 60% 이상이고,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는 등 환경 문제에도 앞장서며 주변 여느 국가들과 다르게 푸르르고 청명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출범한 UN의 역사는 70년이 넘었지만, 국제사회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받던 나라가 원조 공여국이 된 사례는 대한민국이 유일무이하다. 르완다 대통령 폴 카가메가 한국을 경제개발 최적의 모델로 꼽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부모를 잃은 친구에게는 부모를 잃은 친구가,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자식을 잃은 부모가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이치다. 한국에게는 지독하던 수탈과 가난의 역사를 이를 악물고 버티며 극복해온 세월에 대한 훈장과도 같다.

 

부러움을 사는 일과 존경을 받는 일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풍요로움, 천재성,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인내와 극복이 담긴 서사를 마음에 품는다. 부러움은 세상을 구분 짓고 우리를 좌절시켜 단념하게 하지만, 존경심은 우리를 끊임없이 같은 길, 변화의 길로 초대하고 인도한다.


Fred's family tomb in Yamagabe, where 16 are burried

서방 국가의 외면으로 더 가속화되었던 제노사이드, 그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르완다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활발했던 움직임들은 ODA를 기초로 한 영리 혹은 비영리 기구들이었다. 위기가 기회가 되는 것처럼 도움받는 법을 배우며 살아온 르완다 사람들은 도움 주는 방법을 가장 먼저 배우게 됐다. NGO나 GO단체와 함께 일하면서, 유학을 가거나 새로운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죽고 떠나간 황망한 모국으로 돌아온 프레드가 선택한 결정도 마찬가지였다. 8살 때 삼촌 손에 이끌려 북쪽으로 이웃한 우간다로 보내졌던 일 때문에, '살아남아야' 했던 경험. 내전이 모두 끝나고 다시 찾은 고향 야마가베 지역 산자락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분노와 슬픔, 허무함과 들끓는 의지들이 한 데 섞여 더부룩한 감정만이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르완다 인구의 1/3 가해자로 동참했으니, 주변에 살고 있는 이웃은 가해자 이거나 가해자의 가족들이었다.  땅에 발을 딛고 서서 느껴야 했을 어그러지고 짓눌린 감정을 나는 감히 공감할  조차 없다. 수많은 가해자들을 수용할 공간조차 없었던 르완다는 전통적 재판제도 '*가차차(Gacaca)' 활용해 가해자들을 피해자의 집에 노동력을 제공하거나 소와 같은 재산을 제공하도록 조치를 취해왔다. 가차차는 일반적인 사법 재판과는 달랐다. 처벌을 목적으로 죄를 기소하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 시행되어 왔다.


프레드는 살아남아야 했고, 용서해야 했고, 화해해야 했다.

Fred KASIGWA , Founder of People for people(NGO), Managing Director of MotherLand Farmers

그러나 프레드의 결정은 어떤 좌절이나 단념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8살의 프레드는 우간다에 홀로 보내졌고, 르완다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그 사실이 바뀌지 않았다. 프레드는 어린 나이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았고, 곧장  'People for people NGO'를 만들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식생과 교육을 책임졌다. 5년 동안 100명의 고아들이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을을 다시 살리는 일이 재판과 처벌일 수 없고, 악수와 눈물만도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게 할 농장을 함께 일궜다.


다시 찾은 땅에 프레드가 기억하는 것은 많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땅에서 자신의 길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되찾았다. 농업 전문화 교육을 통해 마을에는 새로운 활기가 찾아왔다. 염소들은 계속 새끼를 낳았고, 소들이 양질의 우유를 생산하고, 아이들에게 건강한 한 끼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MotherLand Farm은 커피 가공 능력을 갖춘 프레드의 새로운 농장이다. 160여 개의 소규모 농부들이 이곳에서 커피를 가공하고 수익을 창출한다. 수익은 다시 마을 곳곳에 재정적인 지원으로 활용된다.


프레드의 삶의 목적은 교육이나 농업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삶을 살아 내는 것. 함께 살아 내는 것 뿐이었다. 우리의 삶이 직업이 되는 순간이 있다. 굴곡진 삶은 더 끈질기게 우리를 그곳으로 끌어당긴다. 그러한 곳에는 직업과 삶의 괴리가 없다. 직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남을 돕는다는 말처럼 위선적이고 교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남을 도와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은 우리내 삶에 꼭 필요한 지혜다.


우리는 모순 속에 산다. 평범한 이웃의 얼굴에서 인간의 잔혹성을 마주하기도 하고, 지독한 가난 속에서 관계의 풍족함을 목격하기도 한다. 도움받는 법을 알아야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가 반드시 나아가야 할 미래로 통하기도 한다.

상처는 아물고 흉터는 더 이상 불편하지 않지만 문득 그때가 기억난다. 기적은 무엇인가.

기적은 상처 받지 않는 것이 아니고, 흉터 남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살아지는 삶 그 자체다.

르완다가 감히 주창하는 용서와 화해는 반드시 이루어질 기적과도 같다.








사진: Yolanta C Siu (www.yolantasi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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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차(Gacaca) : 아프리카의 특수형태의 법정. 가차차는 잔디가 깔린 마당이라는 뜻으로 지역사회의 힘을 빌어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진실규명과 화해를 이끌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과거사 청산에 적합하다는 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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