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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Feb 12. 2020

Regain(1)

Rwanda, my monastery

Regain

1. 동사 (특히 능력·특질 등을) 되찾다[회복하다]

2. 동사 문예체 (떠났던 장소로) 되돌아오다


고향방문단. 내가 속했던 단체 KOIC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의 새로운 프로젝트 공고였다. 나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총 2년 4개월을 르완다에서 지냈었는데 당시 진행했던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평가할 수 있고, 적지 않은 기간 동안의 그곳에서의 삶을 돌아보며 회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고향은 단순히 '방문'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는 곳이다. 나는 줄곧 내 삶을 르완다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으로 구분 짓고는 했으면서도 정확히 그 이유가 무얼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고향을 고향으로 만들어주는 수만 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게는 세 가지 뚜렷한 이유가 생각났다. 자유와 멘토, 실패가 그것이다. 


삶에 있어서 국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당시 내 인생에서 가장 거대하고도 중대한 결정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 발칙한 선택은 수많은 성장통과 함께 내 세계관을 더 넓고 단단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세상을 몸으로 살아내기 위한 내면적인 성장 또한 집약적으로 이루어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유가 주는 책임감과 무게감 때문에 수 없이 절망해야 했다. 지구 반대편을 문자 그대로 날아와서는 내 삶과 이들의 삶에서의 인과관계를 낱낱이 들여다보아야만 했으며, 그동안 내 주변을 감싼 의례적인 모든 일상에서 멀어져서는, 값 없이 누리며 살았던 모든 주변 요소에 대한 크고 작은 금단 증상을 다 이겨내야만 했다.


옹이가 박힌 내 젊은 편견과 고집은 그렇게 산산이 부수어지고 나서야, 다른 사람을, 다른 세상을, 나의 다른 인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약한 속살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때의 자유는 더 이상 내가 가진 것들의 보장과 안전을 위한 좀스러운 싸움이 아니라, 언제든 깨질 준비가 된 처절한 성장에 관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한국에서의 자유와, 국경이 없는 자유의 크기는 비교할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경상도 만한 크기의 르완다는 내게는 세상만큼 거대한 나라였으며 거듭 자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고향이 되었다. 


르완다에 처음 도착해서 내가 마주한 진실 중 한 가지는 이 세상에는 단 두 종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이 단순하고 명료한 구분은 어설픈 농도의 인간들, 이를테면 내일 할 사람, 나중에 할 사람, 조건이 맞으면 할 사람, 하다가 만 사람, 그러한 부류에 대해서 아주 단호했다. 르완다에는 하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확신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속한 이곳의 사람들은 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오랫동안 해 온 사람과 심지어 그 일을 잘하는 사람들까지, 선명함을 넘어 명징한 충격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그들과의 현저한 격 때문에 생긴 이질감이나 자괴감에 빠져있을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내 삶에서 처음으로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어딘지 쑥스럽지만 자랑스럽게 흠모하게 된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 생각과 행동에 괴리가 적은 사람들. 이상을 현실로 거듭 도전하는 사람들. 그들의 삶은 농사꾼들의 삶만큼이나 지혜로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의 아낌없는 지혜의 젖과 꿀로 나는 성장했다. 내게 부모의 사랑만큼이나 성장을 허락한 사람들이 여전히 나의 고향 르완다에 살고 있었다. 


르완다에서의 내 역할은 때때로 교육자였고, 때때로 활동가였으며, 한국인과 세계인이라는 정체성으로 두 나라의 크고 작은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나는 공상가였다. 여물지 않은 전문성과 짧은 기간의 경험 위에 내가 세운 다수의 목표가 공상이었으므로 실패로 마무리된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스스로의 평가는 르완다에 대한 그리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다시 돌아가지 않는 방법으로 나는 두 번째 고향을 떠난 것이다. 


천 개의 언덕과 그곳에서의 삶이 루머처럼 흐릿해져 갈 즈음 나를 다시 불러들인 것이 바로 이 상처와 실패라니 참 인생이 얄궂다. 언덕 한 자락을 넘으면 와락 눈물이 날정도로 아름다운 나라에, 비탈진 고개를 천 번을 넘으며 진부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그 나라에, 가파른 경사에 낙심하면서도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웠던 그 때로 돌아왔다. 한 나라의 개발이라는 것이 그렇고 한 사람의 성장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유지 보수라는 끊임없는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길러나가야 한다. 르완다라는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왔지만, 다시 되찾은 기회와 스스로의 회복으로 삶은 더 멀리 전진한다.     

© Yolanta C. S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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