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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Nov 07. 2019

겨울이 길수록 봄이 아름답다 (2)

자연과 농업의 산물이 바코드가 붙은 산업의 생산품으로 변모했고, 자연의 일부로서 더불어 살아가던 우리들은 도시에 고립되어 연봉으로 값 매겨지는 산업의 효율적인 생산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풀을 먹어야 할 소들은 집단 사육으로 좁은 우리에 가두어져 길러지다가 급기야 동족 내장을 먹으며 미쳐간다. 이제 자연은 오직 자원으로 존재하고, 사람은 의존적인 소비자로 사육된다. 우리에게 허락된 자유의지가 결국 스스로를 파괴시키는 자유까지 정진했다. 천연자원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자연 본연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비인간적 산업혁명이 심화될수록 자연 속에 살아가는 무엇도 자연스러울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산업화가 표방하는 ‘노동 절약’과 인간에게 필요한 ‘좋은 노동’의 양립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목격했다. 산업화가 자연과 인간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발전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설령 그것이 우리의 건강과 직결되는 식품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영양결핍은 이제 보다 쉽게 관리할 수 있지만 정보의 과잉공급이나 결핍은 우리를 더 병적인 소비자로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멈추어 서 서 다시 계절을 탐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휴식(休息)이 필요하다. 순환하는, 순환해야만 하는 자연을 우리 삶의 척도로 다시 삼고, 더불어 존재할 수 있는 건강한 방향과 속도를 이해하고 설정해야 한다. 


'한 사회의 미래가 그 사회가 만들어내는 음식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농경사회를 거치면서 모든 사회가 품었던 기본적인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의 먹는 행위가 불가피하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불가피하게 농적인 행위임을, 그리고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세상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크게 달라짐을 이해해야 한다.’ #12 농민생활향상 운동가 웬델 베리의 말처럼 농적인 행위를 이루는 근간은 ‘건강하게, 일 하고 먹고 마시는 문화’였다. 건강을 의식한 노동은 지속 가능하고 윤리적인 노동이다. 또 건강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문화는 건강한 노동의 보상이며, 이것들은 모두 자연과 이어진 유기적이고 상호적인 행위이다. 자연환경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개인의 건강에 대한 깊이 있는 의식을 가지고 ‘먹는 행위’가 바로 자연과 인간의 생태적 건강을 위한 투쟁이며, 사회의 성숙한 시민이 되는 첫 발걸음인 것이다.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식사 본연의 의미, 즉 먹는 즐거움과 공동체 의식을 먼저 회복해야 한다. 먹는 즐거움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의 원천인 세계와 생명을 정확히 의식하고 이해하는 일과 같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스민 음식에서 삶의 참 맛을 느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밥과 국을 제외한 나머지 반찬은 공동의 것이다. 이를 서로 나누는 사이를 ‘식구(食口)’라고 표현하는데,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을 모두 가족과 동등한 관계로 설정하는 의미를 가지며 이것은 한국 공동체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기독교에서 식사를 하는 행위는 ‘커뮤니언’이라 지칭한다. 성찬식이라는 뜻 외에 ‘친밀한 교제’나 ‘영적 교통’을 말하기도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식사를 함께 하는 행위에는 서로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가 있고, 이는 정성을 주고받는 깊이 있는 관계를 담보한다. 


계절이 오롯이 담긴 식탁에 사람들과 둘러앉는 일, 그곳에 혁명이 있다. 풍성한 계절이 담긴 곳, 생명을 다루고 생명을 이야기하는 곳, 매일 반복되며 미래를 향하면서도, 과거의 지혜와 유산이 담겨있는 곳. 생명력 넘치는 자연을 매개로 삶의 맛을 되찾고,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생활의 현장에서 대화와 관계,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혁명을 부르짖고 투쟁하던 생명들은, 늘 봄을 상상하며 그 혹독한 겨울을 버텨 냈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1979년 서울의 봄, 2010년 아랍의 봄, 그리고 2019년 계절을 벗 삼아 건강한 생명을 위한 혁명을 기도하며, 일본 아키타현 사람들의 말을 빌려 글을 맺는다. 


“겨울이 길수록 봄이 아름답다.”


© Yolanta C. S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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