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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gseop Nov 07. 2019

카페에 관하여(1)

밥과 커피

© 박초롱

술과 담배를 비롯한 여타 기호식품을 즐기지 않는 내가, 성인이 된 이후 거의 하루도 제외하지 않고 커피를 마신다. 몸속으로 스미는 다량의 카페인에 동공과 심장이 종종 멋대로 반응하지만, 특별히 각성을 위해서 마시지는 않는다. 다만 오후 늦은 시각 글을 쓰기 위해 자정까지 매장을 개방하는 스타벅스 카페에 앉아, 문득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커피 시간’을 발견한다. 술의 결과는 잠이요, 커피의 결과는 ‘깨어있음’이라고 했던가. 잠들지 않는 도시, 서울의 동력이 바로 이 음료였던 듯하다. 


1999년 첫 국내 진출 이후, 20주년을 자축하는 스타벅스. 나의 아버지는 당시 여의도 회사 동료들을 이렇게 회상했다. “2000원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길고 긴 줄 서기를 마치고 위풍당당하게 4000원 스타벅스 커피를 사는 사람들. 로고가 보이도록 들고서 거리를 활보하거나 회사 테이블에 모셔두던 사람들.” 그때도 지금도 이 미국 프랜차이즈 커피의 가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유럽 사회 귀족들의 음료였던 커피가 ‘kaffeeklatsche(커피 수다)’, ‘kaffeeschwester (커피광 아가씨)’ 같은 단어들을 파생시키며 빠르게 대중문화로 확산되었듯이, 변한 것은 미국 프랜차이즈식 커피 문화가 한국사회의 대중문화가 되었다는 것뿐이다. 


에두아르트 야콥이 <커피의 역사>에 서술한 것처럼 500년 전 유럽에 처음 들어온 커피가 맥주와 포도주를 밀어내고 시대의 동반자가 되었다. 유럽 도시 카페가 정치, 예술, 문화 다양한 분야에서 혁명을 이룬 대화들이 활발히 오가는 장소가 되고, 그렇게 커피는 근대의 사고와 감정을 규정하는 물질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커피와 카페의 의미는 현대에도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삼겹살에 소주가 진지한 대화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2000년 초반에도 나는 곧잘 서울의 커피숍을 방문했다. 커피에 알코올이 없던 탓에 여성적 음료로 치부했던 유럽 사회처럼, 카페를 제안해도 친구들 사이에서 그다지 환영받지는 못했었다. 카페는 도시생활의 피로감 속에서 개인적으로 간절했던 공원의 대체재였고, 진솔했지만 잊히기 쉬운 밤의 대화들을 건설적인 낮의 대화로 옮겨올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였다. 나아가 오늘날에는 예술, 건축을 품은 컬래버레이션 플랫폼으로 밀레니얼 세대의 유토피아이자 젠트리피케이션 등 부동산 문제의 주범으로 시대를 반영하는 사회 그 자체가 되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먹고 마시는 행위가 문화예술 행위라고?’ 나는 매일 인스타그램에 홍수처럼 업로드되는 정방형의 카페 사진들을 통해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이해한다. 


도대체 커피콩이라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열대지방 농산품 볶는 향기가 서울뿐 아니라 세계 도시들을 가득 채워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대가 지향하는 ‘국경 없음’의 가치, 국가와 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도시와 시골이라는 지역의 경계를 허물어가는 움직임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한 도시를 더 면밀히 바라볼수록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이때 커피콩을 포함한 농산품들은 도시와 시골 그리고 국가와 국가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미국에서 시작된 ‘Farm to table’ 운동이나 이탈리아의 ‘Slow food’ 운동은 여전히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들에 영향을 미치며 식문화뿐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킨다. 시골에서의 일상이 도회지에서는 가히 혁명으로 불릴 만큼 삶의 모습이 달랐던 것이다. 상품에 너무 많이 붙은 여러 종류의 인증 라벨들 때문에 시쳇말로 여겨지거나 단순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생산을 위한 혁명가적 농부들의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농업이야말로 도시가 찾던 아방가르드 그 자체였으므로 도시는 ‘소비운동’을 통해 그 외로운 싸움을 보답하고 지지한다. 


커피 농업은 20세기로 오면서 *구르메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스페셜티 커피 개념이 안정적으로 도입되면서 생산량보다 커피콩의 질을 열성으로 개선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원두 생산 지역만을 구분하기보다 농장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농장이 곧 브랜드가 됐다. 농장주나 수확 및 가공 방법 등 더욱 다양한 정보들이 패키지 안에 담겼다. 고도의 소비시대를 만난 커피산업은 시장과 생산자, 소비자가 더욱 활발히 교류하면서 집약적으로 성장했다. 시장은 새로운 개념과 기준을 만들고, 생산자는 그 니즈에 맞추어 농법을 개선하고, 경험 중심적인 소비를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으로 커피 산업에 마침내 *제3의 물결이 도래했다. 


제3의 물결로 커피는 맛과 향뿐만 아니라 의미까지 개발되고 진화하고 있다. 농부들은 상품에 생산과정을 담아내고 소비자는 생산자와의 관계까지 구매한다. 1994년, 동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르완다에서 일어난 100만 명 대학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르완다 농장에서 재배된 원두를 서울 시내 곳곳에서 맛볼 수 있다. 르완다의 여성 커피 농부 조합이나 미망인들이 운영하는 커피 농장 상품들을 통해서 우리는 먼 생산지의 이야기를 국경 없이 접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풍요로움은 단순한 상품의 질 개선이나 넉넉한 소비가 아니라 국경을 뛰어넘는 정보와 윤리적인 소비를 통해 실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도시의 열망은 이제 농도 짙은 미세먼지를 피해 근교, 외곽, 저 멀리 지방 소도시를 넘어 제3세계까지 미친다. 도시의 일상에도 계몽된 농장의 *복작(Polyculture)의 의미가 스며든 것이다. 단순히 다양하게 존재할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일과 삶을 존중하고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간다. 이때 먹고 마시는 일은 성숙한 문화시민의 소중한 행위이다. 서울의 식탁 위에서 소비되는 한 잔의 커피와 한 끼의 식사가 그 농부의 커피와 그 농장의 채소인 것을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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