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는 거기서 거기다
도무지 자신을 자기의 방식대로 소개하길 원하지 않는 자기소개서를 고쳐쓰기를 몇 회 째. 이력서를 고쳐쓸 때마다 받아볼 담당자에게 어쩐지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 반성문을 쓰는 것만 같다. 잘 알지도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첫 이력서를 쓰던 날이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이른 나이에 남의 이력서를 받아 보는 입장이 된 적도 있었다. 지금 다시 이력서를 준비하기까지 사실 그런 식의 (좋게 보아) 커리어 전환이 두어 번 더 있었지만, 이직과 퇴사를 기쁘게 준비하는 요즈음의 정서와는 자못 다른 것이었다.
내가 몸담은 산업은 말단 사원이 사장이나 대표이사가 되기까지 소위 '다 이루었노라' 하고 말할 수 있는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연봉 협상도 까다롭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쉬웠다. 그러니까 신입 직원들은 '1. 배울 거 배우고 옮긴다 2. 배우고 나가서 내 거(창업) 한다 3. 장인정신으로 알을 박는다' 하는 선택지를 금세 선택하거나 미리 골라두고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정답은 없다지만 3번은 확실히 오답이라는 듯 선택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이제 없지만 평생에 직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비극은 여기에 있었다.
이전 직장에서 과장님-을 제외하곤 부서에 2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 없었다-은 새로운 프로젝트의 직원을 함께 뽑으면서 지원자들의 2년이 못 되는 경력들, 아무리 봐주어도 사계절도 채 보내지 못한 기간의 이력은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이력서에 적혀있을 단 한 번의 이직과 각각 10년에 가까운 꾸준함과 헌신이 업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거듭 강조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팬더믹이라는 악재 속에 재취업이라는 험난한 행군이 길어지면서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진 머릿속에 꾸준히 찾아와 메아리치며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이렇게까지 그날이 생생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당시 나의 이력서가 그 아무개들의 이력서와 하등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에 무신경하게 뱉어진 예리하고 날카로운 말들이 꼭 나를 찌른 것처럼 아렸다.
무결점의 인간도 회사도 없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던 때였지만, 그 과장님이야말로 당시 회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거대한 문턱과 같은 존재였음을 직감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비하는 일보다 과거의 영광과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생존을 위한 기업의 변화를 역설하며 나를 고용한 대표님과 10년 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한 기업의 동력이자 역군이었던 나의 상사 사이에서 진실과 허상을 가려보겠노라 열정적으로 허공에 팔다리를 휘두르다가 그만 혼자 지쳐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헤어지자고 말한 건 나지만 여전히 버림받은 것만 같다.
이별의 상처가 지쳐서 스스로 아물고 나는 다시 시시포스가 되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진 이름의 이력서를 다시 끄집어낸다. 내 손으로 받아 보았던 수많은 이력서들 중에 간택되지 않았던 지루한 이력서들을 떠올리며 반면교사 삼아보려는 얄팍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복사해서 붙여 넣은 듯한 수많은 이력서들을 증인 삼아 변하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업계의 우악스러운 면면을 고발하고 싶어 졌다. 똑같이 생긴 우리의 이력서가 우리 업계와 사회가 답습하는 문제들을 설명하는 통계자료라고 떼쓰고 싶다. 그러나 이내 이력서를 한줄한줄 뜯어고치는 염치없는 나는 엄연히 그들과 한패다. 나는 부조리하다.
이력서를 적지 않아도 되는 삶을 나는 모른다. 안다 하더라도 그 것이 꼭 피하거나 굴복하는 길이라면 여전히 거부하려고 한다. 다만 내가 아는 진실은 이 볼품없는 이력서의 주인이 나라는 것이다. 반항하고 자유로우며 열정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희망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이 애잔한 반복을 멈추지 않음으로 운명은 나의 것이다. 나는 이력서에 적힌 나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