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손님이 오면, 나는 이 도시 생활에 대한 열정이 담긴 '반드시 방문해야 할 장소' 목록을 건넨다. 이 목록은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며, 항상 백 개를 넘지 않도록 신중히 관리한다. 각 주소에는 어제오늘의 생기 넘치는 도시 정신이 담겨 있다. 디자인 갤러리나 숨겨진 박물관처럼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곳도 있지만, 한때 최고로 여겨졌던 비스트로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들은 최근 들어 상당수 목록에서 빠졌다. 이 시티 가이드에는 어쩔 수 없이 나만의 고집스럽고 편협한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이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현지인이 추천한 가성비 좋은 쇼핑 장소를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마도 목록에 포함된 최고급 호텔이나 고급 초콜릿 가게처럼 화려하고 호화로운 장소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글로벌 유통망을 갖춘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영향으로 이제는 프랑스에서만 구할 수 있는 제품이란 거의 찾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나는 사람들이 루이비통 신상 가방을 위해 줄 서는 대신, 모기업 LVMH가 운영하는 슈발블랑 호텔의 레스토랑이나 퐁뇌프 다리 앞 루이뷔통 카페에서 막심 프레데릭의 디저트를 경험하길 권한다.
어딜 가나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단순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파리의 본질은 줄곧 사치스러움에 있었으니까. 나는 그 사치의 정수가 디저트 케이크 한 조각 안에 담겨 있다는, 보다 진지한 주장을 내어놓으려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철저히 보존하고 관리한다. 가능하다면 도시 전체를 유리돔 안에 넣어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할 것이다. 디저트 가게도 그 예외는 아니다. 먼지 하나 없는 유리 전시장 위로, 거의 결점 없이 매끄러운 타르트, 과일보다 더 과일 같은 과일 케이크, 동전만큼 작고 정교한 초콜릿들이 우아하게 배치된 모습은 예술이라는 단어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여전히 가문이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수많은 파티시에들이 만들어낸 호화로운 작품들은, 대량생산과 빠른 소비에 잠식된 패션업계의 상품보다 훨씬 더 깊고 충만한 경험을 제공한다. 아름다움, 순간의 기쁨, 오감의 만족,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춰진 허무함까지. 완벽한 디저트는 입안에 결코 무거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미 고된 일상에 어떤 짐도 더하지 않으려는 듯. 더 많이 소비되기를 애원하지도 않는다. 더 깊이 느껴 보라고 요청할 뿐. 다양한 쾌락의 레시피는 물질적 소유를 넘어, 창조적이고 해방적인 경험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풍요를 찾아 파리까지 왔다면 잠시나마 효율적인 시스템과 실용성의 굴레를 벗어나 삶의 장식적인 요소에 집중해 보길 권한다. 파리를 제대로 즐기려는 시도는 곧 사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다. 사치가 낭비와 과시의 도구로 인간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비판과, 인간의 순수한 욕망과 에너지를 표현한다는 찬사는 이미 사치가 절정을 이뤘던 18세기 프랑스에서 충분히 논의되었다. 귀족의 사치가 왕실의 몰락을 앞당겼지만, 동시에 이탈리아가 쥐고 있던 문화 권력을 프랑스로 옮겨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혁명 이후, 사치는 운명처럼 대중의 것이 되었다. 그러니 파리의 디저트 ‘부티크’에 들어가 평소라면 고르지 않았을 가장 화려하고 독창적인 것을 하나 선택해 보라. 대리석 테이블 위에서든 센강 옆 산책로에서든, 그 정성스러운 표면을 무자비하게 베어물고 나면 회색 빛 파리가 비로소 본연의 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것이다. "사치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은 짐승만큼이나 초라하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꿈, 아름다움, 여유 처럼 필요를 넘어서는 무언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이 글을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말하길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권하는 이유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