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ngseop Nov 05. 2024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

생마르탕 운하 옆 좁은 골목길의 한 카페에서 처음 만난 그는 최근 레일라 슬리마니의 책을 가장 흥미롭게 읽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슬리마니의 문체가 상황을 생동감 있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문장마다 프랑스어 고유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소개했다. 프랑스 문학계에서는 프랑스어를 정교하게 다루는 작가들이 특히 주목받는데, 이는 프랑스인조차 고급 어휘를 활용하거나 동의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완벽하게 구분하며 다루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슬리마니라는 이름은 나에게도 익숙했다. 그녀가 2016년 『달콤한 노래』로 프랑스어 최고 작품상인 공쿠르상(Prix Goncourt)을 수상하면서 오랜 시간 단골 서점의 주요 매대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돌연 프랑스어 진흥을 위한 대통령 특별 대사로 임명되며 문학적 성취를 넘어 사회적 영향력까지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어 발표한 소설 『타인들의 나라』와 『한밤중의 꽃향기』 역시 지속적으로 호평을 받으며, 프랑스 문학의 여성성과 자유를 상징하는 불멸의 아이콘인 프랑수아즈 사강과 비견되었다. 나에게 두 사람 사이에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프랑스 출신을 암시하는 프랑수아즈라는 이름과 달리, 레일라는 그녀의 이름과 표지 사진이 보여주듯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라는 점이었다.


번역 작품에 주어지는 국제상을 제외하면, 외국인이 한국의 문학상을 받는 일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문학이 언제나 문화와 정체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외국 작가에게 너그럽지 않은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공쿠르상은 프랑스 국내에 한정되지 않고, 아프리카, 북미, 유럽의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모든 프랑코폰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프랑스어 문학이 포괄하는 정체성은 프랑스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는 60개국의 합만큼이나 다채롭고 풍부하다. 슬리마니가 반가웠던 또 다른 이유는 내가 다른 모로코 출신 프랑스 작가 뮈리엘 바르베리 오랜 팬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작품을 즐겨 읽고, 네덜란드 회화와 일본 영화를 사랑하는 아파트 수위 르네를 통해 프랑스 사회의 통념을 우아하게 비틀어낸 바르베리의 두 번째 소설『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가장 선명한 프랑스의 이미지를 남긴다. 당시 나는 이 소설의 성공을 프랑스인의 자기 비평적 태도와 자조적인 유머에서 찾았지만 이제 법적으로는 프랑스인이지만 평생 이방인의 시선으로 프랑스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선을 관찰해 온 바르베리의 시선을 깊이 체감한다. 특히 맞춤법과 문장 부호까지도 꼼꼼히 챙기는 언어 세계에 담겨있 르네의 진짜 정체성은 바르베리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언어는 구태여 작가가 되어 예술의 형태로 가공하거나 문학상을 받지 않아도 이미 하나의 자본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과 유사하게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강화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라고 보았다. 물론 모든 작가가 자신의 소설 속에서 상상하듯 무소불위의 권력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자본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에도 뮈리엘 바르베리와 레일라 슬리마니 같은 프랑코폰 작가들은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동등한 힘과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신념으로 글을 쓴다. 모로코 페스 지역에서 여성은 "보호받아야 한다"라고 여기는 보수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슬리마니는, 여성을 말할 때 반드시 들려줘야 할 '반란'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작가의 길을 결심했다. 그녀는 지금도 계속해서 프랑스 문단에 모로코에서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문화적 억압을 끌어오고, 프랑스 사회에 이민자 출신의 이중 정체성과 이슬람 문화의 충돌을 이야기한다. 프랑스어가 자신의 첫 번째 정체성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제처럼, 자신의 작품과 목소리를 통해 프랑스어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이전 15화 프랑스 영화의 해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