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창조된 세계는 때로 현실보다 깊은 공간적·심리적 진실을 담고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 이론가 앙드레 바쟁(André Bazin)은 사진과 영상이 단순히 현실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미처 지각하지 못하는 현실의 미세한 부분까지 풍부하게 포착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에 동의할 수 있다면, 사진과 영상 속의 현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개인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예술 형태로 확장될 수 있다. 프랑스는 최초의 영화 발상지로서 베니스, 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영화제를 70년 넘게 운영해 왔다. 주제 선정부터 촬영 기법까지, 감독의 독창성과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가주의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업적인 영화제가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다. 2000년대 이후로 칸 영화제 수상작들이 정치적·사회적 메시지에 지나치게 치중한다는 평론가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들은 작품의 본질적인 완성도보다 특정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에 대한 논쟁이야말로, 이 쇼 비즈니스의 진짜 클라이맥스다.
2023년 5월, 황금종려상은 프랑스의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 감독인 쥐스틴 트리에(Justine Triet)의 '추락의 해부(Anatomie d'Une Chute)'가 수상했다. 트리에는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극영화로 전향한 후에도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개인의 위치, 특히 여성의 내면과 사회적 역할 같은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 장르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기대하지만, 실상 다큐멘터리는 스타일이나 서사에 앞서 감독이 자신과 대상 그리고 관객과의 관계를 치밀하게 설정하는 매우 주관적인 작업이다. 따라서 허구의 이야기에 다큐멘터리적 기법을 섞은 트리에의 영화는 감독의 시선이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네 번째 장편영화 '추락의 해부'는 겉으로는 남편 사뮈엘의 추락사를 둘러싼 서스펜스 법정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감독은 아내 산드라의 삶의 편린을 따라 부부 사이의 성 역할, 권력 관계, 질투, 성적 자유와 같은 주제로 초점을 옮긴다.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허구와 진실 사이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오해와 추측들을 불친절한 연출로 고조시키는 본 영화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칸 영화제가 작가주의 영화를 여전히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오늘날 프랑스 사회의 쟁점을 반영한다.
"무엇을 알고 싶은 거죠? (What do you want to know?)". 영화의 시작, 검은 화면 너머로 작가 산드라 보이터가 대학원생 조에에게 던지는 이 질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모토이자, 영화 그 자체의 모토다. 독일인 아내, 프랑스인 남편, 영어로 길러진, 시력을 잃은 아들, 그리고 검사, 변호사, 전문가, 증인들이 제시하는 '객관적' 증거들 앞에서 주관성이란 한없이 연약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변덕스럽게 변화하는 진실을 통해 관객에게 다시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싶은가? 모호한 진실과 의심은 이 영화의 핵심 주제로, 사건이 끝난 후에도 논쟁은 계속된다. 관객에게 남겨진 이러한 역할이 어떤 이들은 반갑지 않을 것이다. 왜 영화가 즐겁고 아름답기만 할 수는 없는가라고 질문 할 것이다. 2024년 10월, 한국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작품 앞에서 나 또한 같은 질문을 던졌었으니까. 고통에 대한 지독하리만큼 세밀한 묘사와, 꼭 숙제처럼 남는 감정의 잔여물에도, 그의 문학이 전 세계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칸의 연단에 오른 트리에는 자신의 트로피를 연금 개혁에 맞서 싸운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바쳤다. 이제 나는 한강의 수상 소감을 기다리며, 진실을 뛰어넘어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제7의 예술의 쓸모를 다시금 떠올린다.
*파리의 한인 주간지 '파리광장'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