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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Mar 28. 2022

살아가는 우리의 바이블

[문장우리기] #2.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by  생텍쥐페리

수학에 <수학의 정석>이 있듯 인생에는 <어린 왕자>가 있다.

<어린 왕자>는 살아가는 일종의 바이블 같다.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하지만 속이 깊다. 그의 생각과 말로 많은 것을 배운다. 일명 서양의 어린 공자(孔子) 같다.

화자는 가르치려 의도한 말이 아님에도 청자가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구조다.

뭐든 상관없다. 어린 왕자가 곧 생떽쥐베리 자신이었을 테니...

어린 왕자는 생떽쥐베리가 실종되기 1년 전에 발표한 책이었다.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많지만 내가 느끼는 '어린 왕자'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사랑한다는, 관계를 맺어간다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총체이자 정석 같다.

그래,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래...

오아물 루(Oamul Lu)'가 일러스트로 참여한 어린왕자 @oamul

생텍쥐페리의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는 그의 사색 노트라 수식이 달려 있다. 일종의 잠언집이다.

<어린 왕자>를 비롯해 <남방 우편기>,  <야간비행>, <바람과 모래와 별들> 등 그의 책들의 빛나는 구절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돌려 말할 거 없이 정말 하나같이 주옥같다.   

나는 책의 좋아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어두는 편인데, 이 책은 손 안 댄 유형에 속한다.

보는 족족 와닿아 어느 하나만 차별하기 어려웠다.




그가 비록 평탄치 않은 삶과 시대를 살았다해도 생텍쥐페리 안에는 선한 아이의 심장을 가진 어른이 있던 거 같다. 아님 선한 어른의 심장을 가진 아이가 있었거나...

세상에 드문 동경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다.

그의 글들은 미시적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을 파고든다. 삶에 대해 고찰한다. 쉬운 은유로 표현한다.  

그래서 어른의 동화이기도 하다.


비행 중 사라져 버린 그에 대해 나는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별로 간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소년의 눈빛을 한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 장수를 누리고 있는 꿈도 꾸었다.

어린 왕자와 비행사가 해후하는 속편이 우리에게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 당시 가장 기억에 남던 한 가지도 어린 왕자 지폐였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몽환적 음악에 맞춰(음악이 너무 좋았다) 춤을 추던 피에로의 공연과 어린 왕자가 그려진 50프랑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내가 좋아하는 어린 왕자가 동화처럼 지폐에 있다니.. 파랑과 금발의 밝은 노랑도 색감이 참 잘 어울렸다.

유로화 통합으로 이제는 만날 수 없는 50프랑 어린왕자 지폐
몽마르트르에서 인상적이던 거리 공연

삶의 군상이 합주하듯 모여있는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는 다시 꺼내 보면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도 기억한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 중에서

1. 단 한 송이의 장미 혹은 책임지는 사랑에 대하여 

경험을 통해 보건대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볼 때 생겨난다.
_ 바람과 모래와 별들 (P10)
그녀가 남자에게 소리친다.
“나를 붙잡아 주세요!" 사랑의 손길은 너를 꼭 붙들고, 너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잡아 준다.
사랑의 손길은 그렇게 너를 온몸으로 감싸 안는다.    _ 남방 우편기 (P17)
사랑이 싹트면 사람은 모든 것을 그 사랑에 맞추어 생각하고, 사랑은 그에게 넓은 세상을 품은 듯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_ 아라스로의 비행 (P17)
사랑은 주려 하지 않고 받으려고만 하면 오히려 더 가난해진다. 하지만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해야만 한다. 나의 것을 주고도 언제나 잃기만 한다면 그것은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상실하는 것이다. _ 사막의 도시 (P19)
준비에브, 나는 그 마술을 기억하고 있어.               
그대를 양팔로 껴안고 그대가 아플 때까지 포옹하는 거야. 그러면 그대는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으며 큰 울음을 터뜨릴 거야......  _ 남방 우편기 (P21)


2. 관계 맺는 것 혹은 길들여지는 것에 관하여

친구는 당신을 위해 있는 존재이다.                         
타인에게는 열어 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 주는 사람이다. _ 사막의 도시 (P25)
머릿속에 다시 분명 떠오르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이렇게 홀로 앉아 있는 이곳에서 맛보는 가장 달콤한 말이다. 그 말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가득 채워 주리라. 늘 똑같은 말이다. 누구나 위험이 닥치면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것 같다.                                          
“평화가 당신의 마음속에 깃들이기를."                  
이 말은 우리가 가장 즐겨하는 말이다.   _ 전쟁터에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 P29


3. 발견의 비밀 혹은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관하여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의미가 없다고 하면 무엇을 향해 노력해야 하느냐고 당신은 물을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해 난 지극히 평범하지만 살아가면서 터득한 소중한 비밀을 가르쳐 주겠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발견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세워진 목표만이 가장 진실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과 관련이 없어 보이거나 서로 무관해 보이는, 모순에 가득 찬 언어로 이루어진 현재를 잘 풀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그렇게 현재를 잘 다지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_ 사막의 도시 P48

어느 순간 문득 드는 깨달음이 운명을 바꾸어 놓을 것처럼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깨달음은 서서히 준비해 놓은 길을 정신세계에서 갑자기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에 불과하다. 마치 시처럼. 문법을 익히고 문장론에 심취해 공부한 후에야 잠들어 있던 감성이 깨어났고, 어느 날 불현듯 시 한 편이 내 심금을 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_ 아라스로의 비행 P50

"아저씨가 사는 별의 사람들은 집 정원에 5천 송이의 장미를 키우지만 그래도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해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꽃 한 송이나 물 한 모금에서도 그것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어린 왕자는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어요. 언제나 마음으로 찾아야 해요."
_ 어린 왕자 P53

어른들은 숫자에 애정을 갖고 있다. 내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말하면 그들은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결코 물어보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 말이다.
"그 애 목소리가 어떻든?"
"그 애는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그 애도 나비를 수집하니?"
오히려 이런 것들만 물어본다.
"나이가 몇 살이니?" "형제는 몇 명?" "몸무게는 몇이지?" "그 애의 아버지는 월급을 얼마나 받니?"
그런 것을 다 알고 난 다음에야 상대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_ 어린 왕자 P59

4. 진정한 기쁨 혹은 삶이 아름다운 이유에 관하여

설령 우리가 하는 일이 무의미하고, 아무 가치도 없는 시시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역할을 온전히 지각하고 있을 때 우리는 편안하게 살아가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오직 그것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 _ 바람과 모래와 별들 P67
직업의 위대함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람을 한 곳에 모아 준다는 것에 있다.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에게 주어진 진정한 기쁨이다. _ 바람과 모래와 별들 P73
조각가는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만든다. 정작 작품을 만드는 일에서 기술이나 지성, 판단력은 창작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단지 학문과 지성만을 추구한다면, 조각가는 손으로 하는 일에 전혀 재미와 행복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의 행복에 있다. _ 아라스로의 비행 P74


5. 영혼의 불빛 혹은 인간의 소중한 가치에 관하여

난 빛을 내는 인간을 사랑한다. 그가 지닌 양초가 얼마나 두꺼운지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그에게서 나오는 불빛을 보면서 나 그의 가치를 평가한다.  _ 사막의 도시 P84


6. 가치 있는 삶 혹은 인내와 도전에 관하여

우리의 발전은 아직 미완성이다. 내일의 진실은 어제의 실수에서 생겨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우리 자신을 성장하게 만드는 거름이다. 우리는 모두 함께 만날 수 있는 진리의 문을 향해 서로 다른 길로 걸어가는 순례자들이다.  _ 어느 인질에게 보낸 편지 P98
용기가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용기마저 빼앗는다. _아라스로의 비행 P102
완전함은 더 이상 아무것도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아무것도 뺄 것이 없을 때 달성된다.
_ 바람과 모래와 별들 P111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언제나 시간이 없다 _ 카르넷 P112


7. 별은 왜 빛나는가? 혹은 깨어 있음에 관하여

만약 내가 내 존재를 포괄할 수 있고,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공식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나의 진실이다. _ 남방 우편기 P117
언어는 모든 것을 전달하지도, 모든 의미를 함축하지도 못한다. _ 카르넷 P126
나는 더 이상 모진 비바람을 탓하지 않으련다. 직업의 마력은 내게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다. 거기에서, 나는 시커먼 용과 시퍼런 번개의 머리털로 왕관을 쓴 산꼭대기와 대결할 것이다. 그리고 밤이 오면 자유롭게 해방이 되어, 별 속에서 내 길을 찾을 것이다. _ 바람과 모래와 별들 P129


8. 이별과 헤어짐 혹은 사라지는 것에 관하여

중요한 것은 네가 무엇을 향해 가느냐 하는 것이지, 어디에 도착하느냐가 아니다. 인간은 죽음 이외의 그 어떤 곳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_ 사막의 도시 P132


다시 생각해봐도 그는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 지구를 떠났을 뿐이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별을 찾았거나 어린 왕자의 별로 갔을지 모른다. 뭐가 되었든 그가 원하는 곳으로 갔음 그걸로 되었다.        

그래서 밤이면 나는 별들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곤 한다.
그 소리는 5억 개의 작은 방울과 같은 것이었다…
Eyedrops by Raw by peppers (출처: Raw by peppers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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