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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Aug 03. 2023

유효한 꿈의 시간

시간을 초월하는 기쁨

어릴 적 동네는 꿈속 단골 배경 중 하나다.

꿈속의 나는 과거에 그랬듯 단순하고 감정에 충실하다. 사람들 틈에서 배가 땅기도록 웃고 있다.

심장이 간지럽게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시간을 초월하는 기쁨은 따로 있었다.

나의 외할머니와 할아버지, 민지가 있는 시절이란 것.

그리운 이들이 살고 있는 꿈은 때론 현실보다 더 진짜 같았다.

꿈속의 내가 꿈이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니와 기쁨이 선명하게 컸기 때문이었다.

꿈으로 회복한 시간에서 나는 안고 싶은 시절을 한 번 더 살아갔다.

가끔은 당도한 꿈이 시험인 날도 있었다. 예비 못한 꿈속의 나는 꿈인 줄도 모른 채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리운 기억을 떠올리다 유년기로 흘러간 현실의 내가 구글맵과 거리뷰를 켠다.

과거의 현재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손가락 하나로 옛 동네를 구석구석 돌다 변화 속에서도 무사한 장소들을 발견한다.

간판에 이름이 그대로인 걸로 보아 여전히 운영 중인 듯한 약국과 슈퍼.

늘 2.5배속으로 속사포의 영어를 듣고 계시던 고운 얼굴의 약사님,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이톤의 인사를 건네던 슈퍼 사장님은 그대로일까.

단독 주택가였던 집터에는 레고처럼 빌라가 제법 들어서 있다.

차고를 겸하던 뒷마당은 빌라의 주차장으로, 앞마당과 우리 집은 5층 높이의 빌라가 되어 있었다.

내 아지트였던 3층 역시 지금은 한 세대의 집이었다.


현재가 생생히 담긴 핸드폰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돌아오는 시간들을 마중한다.

2층 옥상에 나가 시원하게 볼일을 보곤 난간 사이로 행인을 구경하던 민지, 여름이면 둘러앉아 수박을 먹던 앞마당. 뛰노는 나와 동생 때문에 사시사철 몸살을 앓던 잔디. 때가 되면 주렁주렁 살구와 감이 열리던 나무. 봄이면 꽃을 돌보며 시간을 잊던 엄마. 그중 장미를 유독 좋아하던 아빠.

먼 미래의 내 눈에는 모두가 젊고 활기 넘친다. 어떤 이별이 온대도 그저 먼 시간의 일 같다.

단독주택에 사는 일은 사계를 선명하게 즐기는 맛이 있었지만, 흠이 하나 있다면 웃풍이었다.  

추위에 약한 내게 겨울은 쥐약이었지만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벽난로에 불을 피우면 나무 냄새를 따라 포근한 공기가 퍼졌는데, 눈 오는 날이면 벽난로 앞에 이불을 깔고 누워 눈을 구경하며 구운 마시멜로와 코코아를 먹었다.

손에 손을 잡는 기억들에 추억 속 영화처럼 눈밑이 뜨거워졌다.


공간이 주는 의미도 크지만 금쪽은 우리가 녹아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운 현실의 내가 돌리고 싶은 시간.

이제는 사라진 시간을 생각하니 다시 아득해졌다.

공간이 주는 힘은 사람에게서 온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는 것.

꿈이라 유효한 시간을 노래하며 생각한다.

우리에게 꿈이 있어 다행이라고.


눈을 뜨면 사라진 대도 꿈은 결코 무용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대문 이미지 출처: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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