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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Mar 29. 2022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처럼

브리태니 패닝의 Whipped Cream Daydreams

아우성이 들릴 듯한 위급 상황에도 태연히 자신의 텐션을 유지한다.  

동요도 흐트러짐 따위도 없다. 그건 그저 저 세상 일일 뿐이다.  

브리태니 패닝(Brittany Fanning)의 그림 속 이야기다.

이질적 상황들이 대담한 컬러와 패턴에 방치되며 황당함을 풍기지만 그마저도 다크 유머로 풀어내는 브리태니 패닝 특유의 기지일 뿐이다.  

'Whipped Cream Daydream' / 'Shining' / ' A Time for Martinis'  옷의 패턴에 스티치 작업이 포인트로 들어가 있다

작품의 제목도 4차원의 위트다.

창을 경계로 비행기가 추락 중인 상황에 시크한 선글라스를 낀 여인은 홀로 여러 잔의 마티니를 즐기고 있다. 제목은 'A Time for Martinis'.
화산이 폭발 중인 설산을 불구경하듯 바라보며 비비드 한 점퍼의 여인은 화산처럼 붉은 와인을 즐기고 있다. 제목은 'Whipped Cream Daydream'.

작품의 타이틀 역시 '난 나의 길을 간다'의 필이다.

이쯤이면 '그래, 넌 네 길 가라'하고 체념이다.




4월 2일 자로 막을 내리는 그녀의 전시 제목은 'Whipped Cream Daydreams'이다.

배우이자 가수인 딘 마틴(Dean Martin)의 크리스마스 앨범 수록곡인 'A Marshmallow World'의 노랫말에서 따왔다.

이번 전시의 작업 대부분이 겨울에 이뤄진 만큼 겨울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 붙여졌다.

A Marshmallow World by Dean Martin (출처: Dean Martin Youtube)

A Marshmallow World를 들으며 Whipped Cream Daydreams을 보고 있자니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같은 기분이 든다.


기본적으로 블랙코미디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찜찜한 여운이 끝내 개운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명 높던 미국의 연쇄살인마 'Night Prowler'가 좋아했던 곡이 AC/DC의 'Night Prowler'였다고...

반면, 블랙 유머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브리태니의 작품은 거북하기보다 매력적에 가깝다.

화려한 비현실에 빨려 들어가 그림 속을 서성인다.

이국적이고 세련된 색감이 트릭으로 관통하니 제 아무리 어두운 것도 군더더기 없는 유머와 예술로 용서된다.

작업할 때 범죄 실화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는 브리태니의 작품이 기괴하기보단 익살스러우며 사랑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도함이 너무 과할 때 오는
유머러스함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한국 생활에 오랜 이력이 있는 미국인 작가로 서울에 대한 정서도 그림으로 녹여내었던 만큼 이해가 깊다. 그래서인지 왠지 더 친근하다.




그녀 그림의 특징 중 하나는 얼굴이 없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표정이 없다.

얼굴이 있어도 웨어러블 장치를 통해 감쪽같이 눈을 감춘다.

이는 상황과 대비되는 쿨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속을 알 수 없는 열린 상상을 만든다.

모든 작품에 인물이 등장하나, 인물을 기억하는 건 화려한 색감과 패턴의 옷 그리고 이질적 광경뿐이다.

그가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결코 맞출 수 없다. 모든 건 상상하기 나름이다.

폭풍전야와도 같이 다음 씬에 대한 궁금증도 지속적으로 유발한다.

그림 속 인물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도울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역시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녀의 작품이 주는 또 다른 묘미다.  

Flame On. I'm Gone / Cane Corso Guarding a Nap / Waiting for the blizzard
Double Crossed Legs(September)  /   Waiting With Gene

제 그림에는 지속적으로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가 등장해요.
팬데믹으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이때,
제가 그려내는 블랙 유머가
보는 이를 유쾌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너무나 매력적인 다채로운 색감에 한 번,

대담한 위트에 또 한 번

그렇게 Whipped Cream Daydream은

유쾌한 여운을 남긴다.

그녀가 주문처럼 걸어 놓은 백일몽의 마법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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