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태니 패닝의 Whipped Cream Daydreams
아우성이 들릴 듯한 위급 상황에도 태연히 자신의 텐션을 유지한다.
동요도 흐트러짐 따위도 없다. 그건 그저 저 세상 일일 뿐이다.
브리태니 패닝(Brittany Fanning)의 그림 속 이야기다.
이질적 상황들이 대담한 컬러와 패턴에 방치되며 황당함을 풍기지만 그마저도 다크 유머로 풀어내는 브리태니 패닝 특유의 기지일 뿐이다.
작품의 제목도 4차원의 위트다.
창을 경계로 비행기가 추락 중인 상황에 시크한 선글라스를 낀 여인은 홀로 여러 잔의 마티니를 즐기고 있다. 제목은 'A Time for Martinis'.
화산이 폭발 중인 설산을 불구경하듯 바라보며 비비드 한 점퍼의 여인은 화산처럼 붉은 와인을 즐기고 있다. 제목은 'Whipped Cream Daydream'.
작품의 타이틀 역시 '난 나의 길을 간다'의 필이다.
이쯤이면 '그래, 넌 네 길 가라'하고 체념이다.
4월 2일 자로 막을 내리는 그녀의 전시 제목은 'Whipped Cream Daydreams'이다.
배우이자 가수인 딘 마틴(Dean Martin)의 크리스마스 앨범 수록곡인 'A Marshmallow World'의 노랫말에서 따왔다.
이번 전시의 작업 대부분이 겨울에 이뤄진 만큼 겨울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 붙여졌다.
A Marshmallow World를 들으며 Whipped Cream Daydreams을 보고 있자니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같은 기분이 든다.
기본적으로 블랙코미디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찜찜한 여운이 끝내 개운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블랙 유머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브리태니의 작품은 거북하기보다 매력적에 가깝다.
화려한 비현실에 빨려 들어가 그림 속을 서성인다.
이국적이고 세련된 색감이 트릭으로 관통하니 제 아무리 어두운 것도 군더더기 없는 유머와 예술로 용서된다.
작업할 때 범죄 실화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는 브리태니의 작품이 기괴하기보단 익살스러우며 사랑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도함이 너무 과할 때 오는
유머러스함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한국 생활에 오랜 이력이 있는 미국인 작가로 서울에 대한 정서도 그림으로 녹여내었던 만큼 이해가 깊다. 그래서인지 왠지 더 친근하다.
그녀 그림의 특징 중 하나는 얼굴이 없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표정이 없다.
얼굴이 있어도 웨어러블 장치를 통해 감쪽같이 눈을 감춘다.
이는 상황과 대비되는 쿨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속을 알 수 없는 열린 상상을 만든다.
모든 작품에 인물이 등장하나, 인물을 기억하는 건 화려한 색감과 패턴의 옷 그리고 이질적 광경뿐이다.
그가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결코 맞출 수 없다. 모든 건 상상하기 나름이다.
폭풍전야와도 같이 다음 씬에 대한 궁금증도 지속적으로 유발한다.
그림 속 인물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도울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역시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녀의 작품이 주는 또 다른 묘미다.
제 그림에는 지속적으로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가 등장해요.
팬데믹으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이때,
제가 그려내는 블랙 유머가
보는 이를 유쾌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너무나 매력적인 다채로운 색감에 한 번,
대담한 위트에 또 한 번
그렇게 Whipped Cream Daydream은
유쾌한 여운을 남긴다.
그녀가 주문처럼 걸어 놓은 백일몽의 마법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