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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Apr 03. 2022

끝이 아닌 시작이길

[영화 #4.] <Last life in the universe>

너무 오래전이라 영화의 장면은 편린처럼 조각나 있지만, 켄지가 왔다는 생각에 꽃같이 웃던 노이의 얼굴은 그대로 남아있다. 영문도 모른 채 소녀처럼 설레하던 노이 때문에  쓸쓸했던 기억도 함께.

영화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Last life in the universe)>.

오랜만에 OST 앨범을 듣고 있자니 귀신 같이 잔상이 살아난다.


정리벽에 걸린 일본 남자 켄지와 정리와는 담쌓은 태국 여자 노이.

남자는 호시탐탐 죽을 타이밍을 찾고, 여자는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려 한다.

켄지(아사노 다다노부)에게 죽음은 잠에서 깨어나듯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는 희망이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최상의 행복이다.

어찌 보면 새 삶을 갈구하는 켄지와 노이(시니타 분야삭)의 종착지는 맥락이 다르지 않다.


형을 잃은 남자와 동생을 잃은 여자. 유일한 가족을 잃은 그들은 한 마리 도마뱀처럼 외톨이다.

현실에 그저 너무 지쳤을 뿐이다.

대구를 이루듯 남자와 여자는 다른 듯 닮았다.

이내 서로를 알아본다.

서로에게 따뜻하고도 쿨하게 스며든다.


이 영화의 이국적이고 복합적인 분위기는

펜엑 라타나 루앙 감독과 '아비정전, 화양연화'의 촬영 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일본과 태국인 배우 등

제작에 참여한 이들의 다양한 피가 매력있게 빚어내는 아우라다.


시계열을 따르지 않고, 현실과 상상도 뒤섞여 흐르므로 영화는 정적이지만 자유롭게 열려있다.

건조하고 느린 앵글 속 세상은 덥지만, 정작 두 인물은 감정적이지 않아 오히려 서늘한 듯 쿨하다.

영상 속 꽉 채워진 미장센은 그들의 변화를 말없이 잘 그려내고,

앰비언트 무드의 음악은 나른하나 무겁게 깔리지 않고 춤을 추듯 유영하며 영상을 뒤따른다.


켄지가 노이가 만들어준 음식을 나눠먹고, 노이가 켄지의 집을 정리해주며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가운데

_ 처음으로 켄지가 웃는다.

_ 노이는 떠나고 싶던 기억뿐인 태국의 풍경이 처음으로 아름답다고 느낀다.  

_ 그들은 살고 싶어졌다.

바라는 것도 요구하는 것도 없이 물 흐르듯이 곁을 지킨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도 심정과 분위기를 통해 서로 닿아가듯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남녀의 만남은

오히려 서로에게 감으로 집중할 수 있는 클리셰가 된다.

사랑에 굳이 긴 말은 필요 없다.

사랑은 마음이 통하는 거니까...

같이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다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노이 : 태국말 더 해봐요
- 켄지 : 1, 2, 3, 4, 5... 5, 5
- 노이 : 더 해봐요
- 켄지 :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요
- 노이 : 태국말 많이 아네요. 더 말해줘요
- 켄지 : 아름답네요
- 노이 : 그렇군요
- 켄지 : 슬퍼요?
- 노이 : 누구나 슬프죠


일본으로 새롭게 떠나는 노이를 공항으로 바래다주는 켄지.

그리고 그도 그녀에게로 떠날 준비를 하지만

켄지를 쫓던 현실이 가로막는다.

그는 자신의 형을 죽인 야쿠자를 죽이고 태국으로 도피해 온 터였다.

 

- 노이 : 나 다시 만나고 싶어요?
- 켄지 : 네
- 노이 : 언제?
- 켄지 : 언젠가


켄지의 가방을 보고, 그가 온 거라 생각하고 기뻐하는 노이의 모습을 켄지가 상상할 때,

그런 상상을 하는 켄지 때문에, 상상 속 노이 때문에 가슴이 아렸다.


켄지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그러나 켄지가 말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고..."

노이는 켄지를 기다릴 것이다.

고로 켄지와 노이는 살아가고, 다시 만날 것이다...

그들은 이제 고독하지 않다.  

그들의 삶과 사랑은

끝이 아닌 시작이고,

그들의 우주에서 살아있는 해피엔딩일 테니까...

# OST

총 4곡이 담겨있다.                   

수록된 곡들이 앰비언트 계열로 유사한 분위기인 반면, 보사노바풍의 Gravity는 유일하게 달콤하다.

Gravity (출처: playground2000 Youtube)

그 외 곡들은 우주를 유영하듯 무중력의 느낌이다. 남녀가 서로를 알아보기까지의 방황이자 여정같다.

Untitled (출처: Aaron Simmons Youtube)

_ + 영화에서 고독한 미식가의 ‘마츠시게 유타카’를 그때는 못 알아봤다. 지나고보니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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