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운 Mar 08. 2022

아름다운 마지막 인사

[영화 #3.] <굿바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난 일본 영화 특유의 정서나 농담을 좋아한다.

싱거운 듯 보여도 깊은 맛이 있고, 직설을 우회해 자극을 최소화하는 위트도 배려 같다.

나도 몰래 미간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빵 터지며 긴장이 '퐁' 증발하는 포인트도 천진하여 울다 웃고 웃다가 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정갈한 시골 풍경이나 고즈넉한 마을 정취도 차분하니 좋다. 일본 여행 때에도 도쿄보단 교토가 좋았고, 기차로 달리던 이름 모를 시골 동네나 사원, 온천 마을의 정경을 더 기억한다.  




그렇게 아끼는 정서 중 손에 꼽는 영화가 있다.

2008년에 개봉한 '굿바이(Good-bye)'다.

이야기는 오케스트라 해체로 직장을 잃게 된 첼리스트 다이고가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앞날 모르고 지른 첼로 때문에 일을 구할 마음은 급하고, 극도로 말을 아낀 구인 광고를 보고 찾은 NK 엔터테인먼트는 여행도우미가 아닌 납관(NK)사의 사무실이다.

첫날부터 홍보용 DVD를 위한 시체 연기 외에 고독사 사체 정리 등 코앞에서 벌어지는 난 데 처음 보는 세계에 혼이 나가고, 온몸은 녹초가 된다.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정작 그를 고민에 빠뜨리는 건 납관사 다이고를 바라보는 주위의 날 선 편견이다. 그 시선은 따갑고 차갑기만 하다.

다이고의 진실을 알게 된 아내마저 그에게 냉정하다
인생 최대의 기로에 섰는데,
첼로를 넘긴 순간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묶여 있다 풀려난 느낌이었다.
내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마도 꿈이 아니었다 보다
- 다이고의 독백 중에서


그가 의심하지 않던 진정한 꿈은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이고는 장례지도사의 길로 스며든다.

고인과 그의 가족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도록, 고인이 또 다른 세계로 잘 찾아갈 수 있도록 그는 진심을 다해 업(業)에 임한다.

예를 갖춰 정성껏 염을 마치고 고인에게 인사드린다.

차갑게 식은 사람을 치장하여
영원한 아름다움을 주는 행위.
그것은 냉정하면서도 정확하고 동시에
따스한 애정이 넘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며 고인을 배웅한다. 고요와 평온함 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손놀림이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다이고의 독백은 나의 마음을 차분히 관통한다.


납관사의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무렵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들은 다이고.

아버지와의 만남을 완강히 거부하지만 어느덧 아내와 함께 아버지 앞에 앉아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꼬옥 쥔 손 안에서 어릴 적 자신이 건넨 돌편지를 발견한다.

그토록 그립던 아들이 종국의 이별에는 자신을 보러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일 수도 아니면 고독한 문 앞에서도 아들 생각에 마음만은 행복했을 수도… 무엇이 되었든 그리움이고 다시 말해 사랑이다.

정성스레 아버지 염을 하며 희미해 보이지 않던 아버지의 얼굴을 또렷하게 되찾는 다이고. 돌편지를 건네며 자신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부드러운 미소다.

원망했던 이의 죽음 앞에 관대한 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서일까 아님 그래도 사랑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이 둘 모두일 것도 같다.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며 아버지를 용서하는 다이고

다이고가 그렇게 아버지의 마지막을 직접 배웅해 드리고, 아버지 손에 쥐어있던 돌편지를 아내 미카에게 건네주는 장면은 뱃속의 아이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옛날에 문자가 없었을 땐 말이야. 자기 마음을 닮은 돌을 주워 상대에게 전해줬대. 돌편지를 받은 사람은 그 돌의 감촉이나 무게를 가지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렸대…

영화의 곳곳 다양한 군상의 가족과 사연, 이별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이별들을 상투적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슬프지만 행복하게 추억한다.

늦은 다이고 일행에게 죽은 사람을 팔아먹는 일을 하는 자라고 무례를 저질렀던   고인의 남편이 납관 후 오늘 아내가 지금껏 본 중 가장 예뻤다며 사과와 감사를   전하기도...

엄마는 사람이 죽으면 제일 마지막에 닫히는 것이 ‘귀'라고 하셨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생전의 고인을 추억하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기억하는 거라고, 그것이 결국 고인의 귀에 닿는 마지막 인사라고 말이다.


<굿바이>에서도 그러한 인사가 자주 등장한다.

누군가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또 배웅받는다

생전에 여고생 양말을 신어보고 싶다 한 할머니의 발에 양말을 신겨드리거나 염을 마친 아빠의 얼굴에 입술 자국으로 연지곤지를 만들고 울다 웃으며 추억하는 가족들의 이별 의식은 예쁘고 슬프다.


우리에게 '굿바이'로 상영된 이 영화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음 세계로 향해가는 문’이란 대사처럼 'Departures'라는 타이틀로 영어권에 배포되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어도 우리 곁에 함께 한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너무 큰 사랑을 주셨던 외할머니가 너무 그립다.    우리 할미에게 난 왜 이렇듯 예쁜 인사를 하지 못했을까? 그날 난 할머니가 떠나신 걸 믿고싶지 않아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다. 아닌 척 담담한 체 했다.

이제와 나의 한심함을 원망하다가 그럼 할머니가 슬프겠지? 하는 마음에 다른 세계를 여행 중이실 외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그려본다. 그리고 하늘에 닿을 화살기도로 우리 할머니에게 사랑과 인사를 전해 본다.

우리 천사 할머니, 하늘에서 할아버지 만나 맛난 것도 많이 잡수시고, 더 많이 사랑하세요. 더 행복만 하세요. 다신 아프지 마세요...

사랑하는 세상 고운 우리 할미 ♡


매거진의 이전글 꿈이라도 좋을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