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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Apr 05. 2022

가족이 되어가는 집

[영화 #5.] 메종 드 히미코 (2005)

내가 아는 <메종  히미코> 그때도 지금도 퀴어 무비가 아니다.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가고 사랑하는 이야기다.   

그녀가 몰랐던 아버지의 사랑이 있는 이야기다.


자신과 엄마를 떠난 아버지를 원망하던 사오리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별 희망 없이 똑같은 하루를 산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 아름답고 낯선 청년이 사오리를 찾아온다.

그는 아버지의 연인인 하루히코다.

아버지 히미코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메종드히미코에서 일해줄 것을 부탁한다.

고약한 제안의 대가는 아버지의 유산이다.  

미움이 마지막 자존심이래도 현실이 무거운 사오리는 청을 받아들인다. 마치 공과 사를 잘 구분할 것처럼...


아버지가 사는 바닷가의 집 <메종드히미코>는 그녀의 심경과 이질적이게 평화롭고 아름답다.

다른 정서의 이들은 설명 없이도 서로를 알고 이해한다. 그 시간 이방인은 사오리뿐이다.

그러나 루비의 주문일지 사람의 힘일지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눈에 보이던 현실을 거부하던 자신을 자꾸 까먹는다. 동화되어 간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사연을 지녔고, 취사선택의 대가를 치렀다.

안락한 일반의 삶을 포기하고 택한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며 자신의 다름을 인정한다.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제대로 미우면, 감정도 남지 않는 법.

시작은 돈이라는 현실이었지만 사오리 마음 한 구석에 아버지가 사는 모습이 궁금했을 거다.

빈정 상할 듯 홀로 아름다운 집에, 작은 숨을 붙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혹하게 낯설고 혼란스러웠을 거다.

그곳에 잔재해있는 엄마의 흔적 역시 그녀의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끊어낼 수 없는 이해의 흔적임을 발견한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오리가 증오한 건 게이라는 성의 본질이 아니라 그것을 이유로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무책임이었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 가족을 떠나 온 이들의 다소 무모하고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결국 세상은 공평했다.

그들 역시 두고 온 또 잃은 것에 대한 고통과 슬픔이 대가처럼 따라왔다.

 

그런 아버지와 대면한 사오리는 참아왔던 질문을 가차 없이 쏟아붓는다.  

- 엄마를 힘들게 한 걸 후회하진 않았는지, 자신을 그리워한 적 있는지...  

정답이 없대도 아버지가 풀어주길 바랐던 미련 같은 슬픔들이다.

그런 사오리의 질문은 마치 꼬마 사오리의 투정 같이 독하지 않다. 그래도 아버지의 마음은 충분히 많이 미안하고 아팠을 것이다.

아픈 히미코를 대신해 메종드히미코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하루히코의 존재감과 감정선도 내내 인상적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집 안에 녹아들며 인물들을 연결하고 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단단한 끈 같다.

하루히코가 히미코에게 갖는 사랑은 단순한 사랑을 넘어서 가족과도 같은 것이었다.

연민과 존경 등 복합적인 감정 역시 그의 곁을 지키는 동시에 메종드히미코를 지키고 싶은 그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힘이 없다.

떠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지키고, 사오리가 찾아와 주길 바랐을 뿐이었다.

남자를 사랑하나, 사오리에게 끌리는 마음을 키스로 시도해보는 하루히코.

그러나 그들은 밤으로 진전하지는 못한다.

하루히코에게 이성은 안해 본 낯선 사랑이다. 마음이 있어도 방법을 모른다.  

그런 그에게 사오리는 잠시 상처받지만, 그들은 이내 현실을 찾아 돌아온다. 그게 현실이니까.

 

난 이 영화에서 여배우 시바사키 코우를 다시 봤다.

시종일관 화장기 없는 민낯에 미간을 구기며 골이 난 티를 내는 그녀는 메종 드 히미코의 진짜 사오리였다.  

예뻐 보이려 하지 않고,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완벽한 사오리가 되어 자신의 감정을 있는 대로 다 들키는 사랑스러운 사오리가, 진짜 같은 그녀의 연기가 좋았다.  

잘 나가는 회사원이었으나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야마자키가 수의로 입으려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의 흰 드레스를 입고 사오리와 함께 꾸미고 춤추며 행복해하는 장면이나

루비가 손녀의 편지에 있던 '피키 피키 피키'를 해맑게 외치며 함께 춤추는 모습  

불가능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는 마법의 주문 '피키 피키 피키'처럼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 모두 아름다웠다.

말미에 아버지의 유품 정리와 함께 메종드히미코를 떠났던 사오리가 결국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고,

그런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는 하루히코와 식구들은 몹시도 행복하고 사랑스럽다.

"사오리가 보고싶어 피키피키피키~ ☆"

<메종 드 히미코>가 말하는 '가족'의 범위는 바라는 것 없이 순수하고 광범위하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며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주는 것이 '가족'이고,

그러한 가족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곳이 바로 '집(maison)'인 것이다.

그렇게 가족이 되어 가는 법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그들이 함께 용기 내 찾은 일탈에서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며 행복을 만났던 것처럼

'메종드히미코'의 행복은 계속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루비가 남기고 간 행복의 주문이 있으니...

피키 피키 피키~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수 있을 그날까지
헤어질 수 없는 그 이유를
얘기하고 싶진 않아
왠지 쓸쓸해질 뿐 왠지 허전해질 뿐

서로가 상처를 주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되니까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두 사람이 이름을 지워 버리면
그제야 마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해 주겠지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수 있을 그날까지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은 알고 싶지 않아
그것은 듣고 싶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며
과거로 되돌아가니까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두 사람이 이름을 지워 버리면
그제야 마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해 주겠지


돌아온 사오리에게 "뽀뽀해도 돼" 하고 묻는 하루히코와 "안돼"라고 하는 귀여운 사오리. 자, 이번엔 꼭 뽀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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