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답장
지난한 일들로 시간이 흘렀다.
이곳을 살피지 못한 동안 계절 하나가 바뀌었단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눈을 뜨니 다른 세기에 와 있는 영화처럼 바장이는 일상 속에 나는 묻혀 있었다.
지난 목요일은 외할머니의 기일이었고, 답장처럼 꿈에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를 보자마자 나는 언제나 그랬듯 할머니를 안고 볼을 비볐다.
동그랗고 작은 할머니의 몸이 내 품에 들어왔다. 따스한 체온과 촉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꿈이라는, 할머니의 부재라는 모든 현실의 망각을 예비하지 못한 나는 할머니와 함께 할 시간에 마냥 들떠 있었다.
할머니는 환한 얼굴로 우리를 위해 만드셨다며 손수 곱게 수놓은 이부자리를 보여주셨다.
분홍빛 봄으로 수 놓인 이부자리는 할머니처럼 곱고 예뻤다.
할머니와 함께 좋아하다가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한창인 이야기의 전원이 나간 것처럼 갑작스러운 현실에 먹먹하고 멍해졌다.
할머니가 선연한 꿈에서 깨고 나면 늘 현실의 무력(無力)이 숨 막히게 엄습해 왔다.
익숙해지지 않는 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 현실과 꿈의 대비가 커 더 슬펐다.
그럼에도 할머니를 다시 또 만나고 싶다.
꿈에도 유예가 있다면,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 할머니랑 얘기를 나누고 싶다.
특유의 손맛으로 시원하고 맛깔나게 무쳐주시던 어리굴젓과 조개젓이 생각나는 하루.
우리 할머니의 꽃 같은 웃음이, 꽃으로 수 놓인 이불이 길몽 같아 위안이 된다.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계신다 믿는다.
종종 하늘을 보게 되는 연유이기도 하고.
※ 대문 이미지 출처: Pexel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