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다른 말
오래 비운 글집은 사유를 두고도 매번 부끄러운 것.
25년, 닫지 못한 서랍을 꺼내며 공백을 허문다.
[2025.11.14]
어느덧 집 앞 백화점에 겨울을 알리는 산타 마을이 지어지고, 여기저기 성탄절 채비로 분주하다.
물론 첫눈을 손꼽아 기다리거나, 코앞에 크리스마스에 발끝이 떠 있던 어제의 나는 무뎌졌다.
순간의 설렘은 반짝이듯 스쳐갈 뿐, 나는 크리스마스를 직후로 신년의 긴장을 바싹 안곤 했다.
새로 쌓아갈 날들에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첫눈 예보에 창 앞을 서성이던 그때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첫눈 하면 빠지지 않는 열일곱 살의 기억도 떠오른다.
첫눈이 온다는 소식에 아침부터 들떠 있던 나와 친구들은 점심시간 때마침 날리는 눈발을 놓칠세라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운동장은 우리 외에도 놓치기 아까운 순간을 즐기는 아이들로 분주했다.
채 쌓일 틈도 없이 집어든 눈을 서로에게 날리며 웃고 떠들던 중 얼마나 지났을까.
묘한 기류에 이성을 찾은 우리는 적막과 유일하게 남은 우리 자신을 발견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마주 보던 우리는 정적도 잠시 한바탕 웃고 말았다.
결국 우리 열 명은 교실이 아닌 교무실 앞에 나란히 앉아 손을 들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새어 나오는 실소에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우리는 지나가는 선생님의 웃음 앞에 또다시 웃음을 해제하고 말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수의 탄생이 1월이었다면, 신년의 무게가 조금은 덜어졌을까.
아니면 되려 크리스마스의 무드가 희석되었을까.
숨이 찰 듯 분주하대도 크리스마스를 앞둔 마음은 한숨의 여유를 나눠 받는 포근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없이도 연말이 주는 한 해의 안도감이 우리에게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결론적으로 성탄절은 꼭 끼워 맞춘 날처럼 12월 하고도 25일이었고, 과장을 좀 보태어 온 지구가 즐거운 날이었다. 한 해의 속도는 저마다 달라도 마치 동기화되듯 모두의 크리스마스는 마음이 풀어지는 힘이 있으니까.
첫눈, 성탄절 이 모두가 청춘의 다른 말 같다는 생각을 하며, 2월의 숨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