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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Mar 08. 2022

향수를 소환할 땐 세 번 외쳐요

[영화 #1.] 비틀주스 비틀주스 비틀주스

봄이 오고 있다.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봄에 팀 버튼의 전시도 열린다니 더욱 들뜬다.

출처 _ 인터파크 예매 웹페이지

팀 버튼의 영화를 손꼽아보다 유년의 소꿉친구 같은 아이부터 애정 하는 아이까지 향수를 소환한다.


비틀주스, 가위손, 크리스마스의 악몽,
빅 피시, 찰리와 초콜릿 공장, 유령신부,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


내가 사랑하는 그의 영화들. 기본적으로 어린이가 볼 수 있지만 어른들의 동화 같고, 결이 좀 다르지만 가족 영화로 손색없다.

철없는 사회를 꼬집는 듯하나 정작 가슴에 남는 건 '가족, 사랑, 우정, 추억' 범벅인 행복 판타지.

나른하고 기괴해도 열어보면, 안은 뭉근하니 선하고 따스해 안아주고 싶은 것 투성이다.

동화적 상상력이 투영된 영상미도 스토리 못지않게 압권이지만 그의 영화는 공포가 고통스럽지 않고, 컬트가 회색빛으로 무장하지 않아 보기 편하다.

눈을 본 적 없는 킴을 위해 에드워드가 얼음으로 눈을 내려준다 @가위손
수선화 만발한 노오란 꽃밭에서 프러포즈를 하는 로맨틱 씬 @.    빅피시

내 마음이 마음가는대로 두고 보는 자유로움도 좋다. 어차피 결과는 해피엔딩일테니…

그중 '비틀주스'는 향수를 부르는 오브제 중 하나다.

It’s show time


어릴 적 우리 집은 단독주택이었는데, 내가 아끼는 공간은 3층이었다.  

그곳엔 나의 세상인 다락방이 있었다.

난 3살 터울의 동생과 뛰노는 외에 집에 있는 시간 대부분은 3층 아지트에 머물렀는데, 간식 타임이나 밥 시간이 되어 엄마가 종을 울리면, 3층에서 1층까지 손잡이 난간을 말 타듯 타고 내려오곤 했다.

엄마는 내가 그럴 때마다 난색하며 마음 졸이셨지만, 이 정도는 내게 약과였다.

어릴 때부터 겁은 없고, 하고 싶은 건 많아 다하고 보는 유별난 애였으니 나를 키우며 우리 엄마 심장이 얼마나 조마조마했을 지 이제야 잘 알겠다.

다락방 벽에는 액자식처럼 4층 다락으로 이어지는 작은 문이 있었는데, ‘이상한 나라의 폴'의 4차원 입구같이 작았다. 그 안으로는 좁다란 계단이 있어 체구가 작은 나한텐 오르락내리락거리기 쉬웠다.


여러모로 다락은 내게 재미있는 놀이터였는데, 당도 직전의 마지막 나무 계단은 유난히 삐걱 소리가 커 식구들에게 나의 행방을 들키기 쉬웠다.

난 계단에서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는 한 뼘 남짓의 부위만을 골라 숨을 참고 딛는 연습을 했다.

오랜 연마 끝에 나의 닌자법은 성공하였는데, 나의 착각대로라면 흔적을 남기는 법이 없었다.


나는 나의 공간에서 흥미진진한 일들을 많이 벌였는데, 드레스마냥 엄마의 원피스 잠옷을 입고 나 홀로 텐션의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고, 영화나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을 따라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글 비슷한 걸 끄적이며 박수를 쳤다.

실컷 놀다가 밤이 되면 엷은 스탠드 불빛만 남기고 라디오를 듣다 잠들었는데,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대거 만든 시기이기도 하다.

다만, 비바람이 심하거나 학교에서 귀신 얘기를 들은 날에는 무섬증에 감당 안되는 밤도 있었다.


습습한 곰팡이 냄새가 가시지 않는 다락방에는 아빠의 어린 시절의 책부터 앨범, 우표 모음집 같은 (자주 보지 않지만 소중한) 것들이 있었고 (내 사랑) 빨강색 티브가 있었다. 낡았지만 기능은 말짱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 덕에 본 많은 영화 중 비틀주스도 그 중 하나다.

“인간은 완벽히 혼자있는 그 순간에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거든. 삶은 원래 외로움의 연속이야”


남들과 조금 달라 외로운 리디아가 불의의 사고로 억울하게 귀신이 된 아담 부부와 친구가 되어 서로를 지켜주고 결국 한 집에 살게 되며 우정을 발하는 영화다. 물론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듯한 비틀주스는 사고뭉치 악당 유령으로 막강한 존재감을 내뿜지만 아담부부와 리디아의 우정을 공고히 만드는 매개 역할로 굵고 짧게 등장한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리디아가 강한 아이라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보니 그저 여리고 흥도 잘 아는 아이 같다.


비틀주스는 사후 세계가 등장하고 여러 생김새의 귀신이 등장하는데, 그마저도 무섭기는커녕 코믹하고 사랑스럽다. 예상대로 흐뭇한 해피엔딩도 흡족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리디아가 수학 시험에서 A학점을 받고 돌아오자 아담부부가 리디아를 축하하며 함께 흥겨운 춤을 추는 장면이다. 하늘을 날며 춤과 노래에 취한 리디아 뒤로 유령 백댄서들이 군무를 추는 장면도 넘넘 사랑스럽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과 삶, 죽음이 있음을 그러나 결국 틀린 게 아니라 단지 다를 뿐...

그걸 요란하거나 불편하게 느낄 필요없음을 팀은 많은 영화에서 말하고 있다.

뼈 때리는 교훈이 기괴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증폭되는 팀 버튼 특유의 감각과 스토리를 변함없이 사랑한다

멋쟁이 팀버튼 할아부지

고로 곧 그를 만날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많은 꿈을 꾸며 유년의 봄을 짓던 나의 아지트가 몹시 보고싶다.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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