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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May 10. 2022

넌 얌체공 같아

친구 A를 기억하며

길을 걷는데 발끝에 무언가 툭 하고 걸린다. 내려다보니 어릴 때 잘 가지고 놀던 얌체공이다.  

던질 때마다 사방으로 튀어가던 자유의 공.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 재미있고, 때문에 잃어버리기도 쉬웠다.  

그런 공을 두고, 나랑 닮았다던 친구가 생각났다.  

 

스물세 살 어느 날 친구 A가 알 수 없는 얼굴로 뜬금없이 말했다.

- 있지, 넌 얌체공 같아.

공에 비유된 건 처음이라 웃기기도 하고, 영문을 몰라 아리송했다.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갸우뚱 하자 A가 진지한 투로 얘기했다.

네가 어디로 튈지 감을 못 잡겠어.
잡히지가 않아

나는 그제야 웃음을 멈추고, A의 표정을 살폈다.

장난인 지 알았던 A의 얼굴이 무거웠다. 우리는 잠시 적막 속에 있었다.


A와 나는 소개팅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A는 의대 본과생으로 시간을 쪼개 쓰는 아이였다. 학업 말고도 교내 오케스트라까지 겸해 늘 뭔가 많았다.

그런 A가 불쑥 찾아와 돌파형 고백을 펼칠 때면, 곤란에서 벗어나고 싶던 나는 장난으로 응수하거나 '미안해’로 차단해버리곤 했다.  

- 알겠어. 기다릴게. 내가 기다리면 되지 뭐

시간이 없는 A가 말이 통하지 않는 내게 늘 한결같은 말을 하고 기다리는 것이 신기하고 또 부담스러웠다.


내 동생의 세례식이 있던 날.

분명 다음 날이 시험인 A가 꽃다발을 들고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났다. 등에는 한가득 책이 들었을 백팩을 메고서. A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다. 뜻밖의 등장에 놀라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A는 식사도 마다하고,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후로도 고맙고 미안한 일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난 우리 관계가 계속 담백하길 바랐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친구' A가 좋았다. 그 이유로 A가 힘들다면, 차라리 친구도 관두자 말할 못된 마음도 갖고 있었다.


우린 오래 친구로 지냈다. 서로의 온도는 여전히 달랐고, 앞으로도 그래 보였다.

A가 내게 좋은 사람일수록 내가 나쁘게 느껴졌다. 나 때문에 버려지는 A의 시간을 보았다.

난 우리 관계를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A에게 완전한 마지막을 말하고 오던 날.

집에 와서야 장갑 한 짝이 안 보인단 걸 알았다. A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장갑이었다.

본래도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내게 그 애가 준 선물은 신기하게도 주인을 찾아 돌아오곤 했다.

귀고리 한 쪽이 그랬고, 장갑 한 짝이 그랬다.

A라는 친구를 잃은 날, 그 애의 장갑도 잃어버렸다.

장갑은 우리 관계처럼 이번엔 돌아오지 않았다.


이따금 여름이면 한 번씩 그 애 생각이 난다. 특히 찬 음료를 먹을 때.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나를 두고, A 따뜻한 음료를 말하곤 했다. 몸과 외부 온도가 비슷한  건강에 좋단 이유였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A 앞에서도  휘핑크림이 산처럼 쌓인 한여름의 아이스 모카를 포기하지 않았다.


A는 어디선가 제 이름을 걸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목표로 하던 정형외과를 전공했을 것이다.

힘들수록 더 커지는 호방한 웃음도 그대로일 것이다.

내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 좋은 사람이었고,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고맙게도 좋은 친구였으므로…

어디선가 A가 행복하기를 희망해본다.

Still a friend of mine by Incognito (출처: Incognito Official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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