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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May 14. 2022

나의 피아노는

시간의 깊이와 애착의 관계

나의 피아노는 유치원 입학을 축하하는 외할머니의 선물이었다.  

건반 덮개를 삼단으로 접어 밀어 넣는 방식으로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은 구조였다.    

피아노를 칠 줄은 몰랐지만,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선물을 애지중지했다.

건반을 누르며 놀던 내가 정식으로 배우러 다니기 시작한 건 여덟 살 무렵이었다.


학원은 아파트에 있는 가정집을 개조한 곳이었다.

다섯 개 방에는 방마다 번호와 피아노가 있었고, 선생님은 우리가 오는 대로 방을 지정해주었다.

학원에는 개가 네 마리 있었는데, 우리가 올 때마다 떼로 달려와 짖어대곤 했다. 그중 한 녀석은 우리가 어린이인 걸 얕잡아 보듯 발에 입질을 하곤 했다. 거실에는 우리 뿐이었으므로 우리가 믿을 건 서로밖에 없었다.

현관문 앞에서 녀석의 동태를 살피거나, 학원에 먼저 온 사람이 신호를 해주기도 했다.

녀석의 입질을 아는 선생님은 우리의 공공의 적을 안방에 가둬 두곤 했는데, 완벽히 닫지 않은 문을 따라 한 번씩 녀석의 탈출 소동이 있을 때면 학원은 피아노 소리보다 우리의 소리로 더 시끌벅적해졌다.


선생님은 실력자였으나 강한 성격에 기분도 자주 오락가락했다. 기분이 좋을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우리를 둥글게 앉힌 , 지구는 둥그니까를 연주하며 합창을 시켰다. 이따금 봉지 라면을  오라 시키기도 했는데, 여덟 살의 우리는 그저 나간다는 생각에 신이  심부름을 해오곤 했다.


손가락을 다쳐 붕대를 감고 간 어느 날, 선생님은 건반을 제대로 짚지 않는다며 붕대 감은 내 손등을 나무 봉으로 톡톡톡 때렸다. 아프고 서러워 나도 모르게 입을 삐죽했지만 울고 싶진 않았다. 

하농을 스무 번 반복하라는 말을 남기고 선생님은 다른 방으로 옮겨갔는데, 애꿎은 내 원망까지 옮아가 그날따라 하농이 더 미웠다.

결국 내적 갈등에 고민하던 나는 터무니없게도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꼬리가 긴 적막에 눈치를 챈 선생님이 문을 연 순간 곤히 자는 나를 보며 기가 차 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난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을 못하고 있었다. 

- 나 또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 안되겠다. 너 내가 엄마한테 다 말씀드릴 거야!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평소와 같이 나를 안아주시고는 피아노가 다니기 싫은 지 물어보셨다.

나는 선생님의 엄포가 엄포로 끝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붕대 손 맞은 것도 난 비밀로 했는데, 어른인 선생님은 치사하게 반칙이었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피아노 학원을 보내달라 한 건 나였다.

이상하게도 피아노를 배우면서 피아노와 사이가 멀어졌는데, 무엇보다 학원에 가기 싫었다.  

요주의 녀석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선생님이 싫었고, 하농의 지루함이 싫었다.  

일률적인 패턴의 음을 몇십 번이고 반복해 쳐야 하는 하농이 지루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하농은 그저 훌륭한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엄마의 사랑에 마음이 풀어지니 여덟 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의지가 되살아났다. 체르니 30번까지는 해보기로 호기로운 약속을 하고, 그 뒤로도 지루한 하농의 수련은 계속되었다. 대신 개인 교습으로 학원을 옮겼다. 선생님은 예쁘고 다정했고, 여전히 하농은 지루했지만 잠을 잘 정도는 아니었다.


몇 년 후 체르니 30번을 마치고 나는 교습을 그만두었다. 집에서 소곡집이나 내가 좋아하는 부르크뮐러, 바흐 인벤션을 치며 놀았다. 부담 없이 편애하는 재미를 즐겼다.

특히 워털루 전투와 바흐 인벤션 4번을 즐겨 쳤다. 

워털루 전투는 칠 때마다 손가락이 춤추는 듯한 리듬감이, 인벤션 4번은 여운이 남는 멜로디와 함께 왼손과 오른손이 따로 또 같이 움직이는 묘미가 좋았다.

내가 바흐 인벤션 4번 곡을 치는 걸 유독 좋아하던 아빠 때문에 아빠가 퇴근해 오시거나 주말이면 서비스로 바흐 인벤션 4번을 반복해 쳐드리곤 했다.

이따금 엄마 아빠를 관객으로 나는 피아노를, 동생은 바이올린을 같이 연주하기도 했다.

나보다 우직하고 참을성도 좋던 동생은 진득하니 바이올린을 잘 배웠다.


피아노와 내가 함께 자라왔듯 시간의 깊이는 애정과 믿음을 생산해 그 축적물에 대한 애착도 깊어지기 마련이다.

피아노에 대한 나의 마음이 그러했는데, 대학교에 가고, 디지털 건반을 만지면서 나의 오랜 벗 피아노는 전보다 쓰임이 확연히 줄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종종 먼지를 덮고 있거나 손 볼 곳이 늘어났다.

그에 반해 나의 애정은 느슨하고도 게을러지고 있었다.  

나 홀로 있는 피아노를 보며 한 번씩 생각이 많아졌다.

어느 날 그 생각이 또 한 번 다녀간 후 나는 인근의 중고 피아노 구매 업체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마친 지 얼마 안 되어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피아노의 상태부터 살피더니 상처를 발견할 때마다 감점을 매기기 시작했다. 감정의 결과는 작정하고 깎아내린 숫자에 불과했다.

내 눈에 여전히 빛나는 피아노가 그들의 눈에는 초라하게 평가되었다.

기분은 별로였지만, 딱히 우길 논리는 없었다.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피아노와 인사했다. 그 모든 게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안녕, 나의 피아노 PHOTO BY 지운 

피아노를 보낸 지 한 달이 지났을까. 나의 우매한 결정을 후회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나는 나에 대한 할머니의 마음도 함께 보낸 거 같은 기분에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할머니와 전화로 오랜 이야기를 나누며, 자꾸만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솔직히 말했더라도 잘했다고 하셨을 할머니지만 차마 얘기하지 못했다. 하고 싶지 않았다.

통화를 마치며, 평소보다 힘을 주어 '사랑해요'를 말했다.  

이별은 쿨할수록 좋지만 세상에 쿨한 이별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나의 피아노가 상처 없는 얼굴로 어떤 여자 아이의 손에 바흐 인벤션 4번을 노래하고 있는 꿈을 꾸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를 맴돌았다.  

다음 날 꿈에서 깨었을 때, 간밤의 행복한 꿈이 진짜이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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