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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May 16. 2022

초인적 힘의 기원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간절할 때 나오는 초인적 힘을 알고 있다.

깔릴 뻔한 아기를 구하려 차를 들어 올리거나 맹수와 싸워 이긴 엄마의 이야기다.

그건 사랑이 만들어낸 초월의 힘이다. 평소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간절할 때만 나오는 힘.   

<닥터 스트레인지: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다가 여동생 도나의 사연에 한 번, 아메리카의 숨겨진 힘에 또 한 번, 나는 덕수궁의 연못과 그날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여덟 살 겨울방학, 놀이터 멤버였던 동네 친구들과 엄마 손을 잡고 덕수궁에 갔다.

네 명의 여덟 살과 그보다 꼬마인 동생들까지 여덟 명의 어린이와 엄마들이 함께 한 길은 대이동답게 부산했다.

답사는 예상대로 짧게 끝났고, 궁 안에 위치한 카페로 몸을 녹이려 들어갔다.  

어른들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동안 우리는 그새를 못 참고 우르르 밖으로 나왔다.

물론 위험한 데는 가지 않겠노라 약속을 하고…

하지만 무지의 어린이들이 뭉치면 호기심도 에너지도 감당이 안되는 법이다.

연못 앞에 선 우리는 꽁꽁 언 수면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엄마와 한 약속도 까맣게 잊고, 빙판으로 쪼르르 내려갔다.

한겨울이라 우리 빼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부츠 발로 얼음을 지치며 각자의 방식대로 고체의 연못을 즐겼다. 동생은 쪼그리고 앉아 빙판을 구경하고 있었다. 동생의 모습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둔탁한 굉음과 함께 아이들의 비명이 들렸다.

- 으악! 너 동생 빠졌어!!!

돌아보니 얼음이 깨진 물 웅덩이에서 내 동생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동생은 깨진 빙판 사이로 물고기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무게를 이기지 못한 빙면에 금이 가며 그대로 무너져내린 거였다.

아이들 모두 엄마를 찾아 가버리고, 혼자 남은 나는 내 동생을 구해야겠다 생각했다.

그 외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집히는 대로 패딩에 달린 동생의 모자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동생의 오리털 패딩은 물을 먹어 무거웠고, 체격 면에서도 내가 한참 밀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안간힘 끝에 동생을 물밖으로 꺼내는 데 성공했고, 때마침 어른들이 달려오셨다.

물을 먹은 데다 겁에 잔뜩 질린 동생이 서럽게 울던 모습과, 그런 동생과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제야 울먹이던 내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후의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언가 따뜻한 것에 돌돌 감겨 엄마의 등에 업혀오던 동생의 뒷모습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옛날이야기를 할 때 이따금 꺼내보는 기억이지만, 그때마다 눈이 감기는 어려운 기억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에게 그날의 일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작고 마른 여덟 살의 내가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났었는지에 대해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또 생각한다. 그 힘의 기원을...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모두 기적을 생각한다.

불운이라는 여러 경우의 수들을 피해 해피엔딩으로 마감한 그날의 우리를 말이다.

내 동생이 잘 살아주어 이렇게 우리가 함께 하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하고 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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