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운 May 18. 2022

직관이 눈을 앞설 때

찰나의 시선 따라 사고하기

직관이 눈(眼) 보다 빠르면, 결말은 실수 또는 실소 유발의 해프닝이다.

생각이 시야를 앞서거나 당시 머릿속의 일부가 투영되어 일어나는 교란이다.

나는 그런 경우가 은근 많은 편인데, 생각이 많고 빨라서란 걸 인정한다.

하도 많아 다 기억나진 않지만 회자되는 하나로 한의원 에피소드가 있다.


친구네 학교로 가는 버스 안이었다.

맨 뒤 칸에 폭신히 앉아 노래와 창밖을 즐기니 공감각적 구색에 여행의 기분이 들었다.  

봄이 더 충만하게 다가왔다.  

눈에 닿는 대로 보고 읽기 시작했는데, ‘뮤지컬 한의원'이라는 활자가 눈에 들어왔다.

'오!' 동서양의 신박한 만남에 눈과 입술이 계란형으로 바뀌었다.

대개 한의원 하면, 사람의 이름을 본뜨거나 관용구 같은 단어가 으레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처음 보는 조합에 병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맥을 짚는 한의사의 이미지를 상상했다. 유쾌한 모던보이와 호걸 느낌의 괴짜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무엇이 되었든 오픈 마인드일 건 분명했다.

- 한의원의 콘셉트는 뭘까

- 선생님이 왕년에 뮤지컬 지망생이었나

- 클래식이 아니라 뮤지컬 음악을 틀어주나

- 뮤지컬처럼 유쾌하고 행복하게 치료해준다는 포부인가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까지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의 날개를 달았다.

친구를 보자마자 대단한 구경을 전하기 바빴다.

있지, 여기 오는데
이름이 ‘뮤지컬 한의원'인 데를 봤어.
넘 신기하고 재밌지
어떤 곳일지 궁금해


그 길을 그렇게 지나오면서도 정작 몰랐다며 친구도 덩달아 신기해했다.

물론 집에 와서도 공유를 잊지 않았다. 이 흥미로운 사실을 가능한 널리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며칠 뒤 친구가 전해온 진실은 지극히 평범했다.  

‘유지걸'이라는 이름 석 자를 '뮤지컬'로 잘못 본 거였다.  

실망한 내 표정이 재밌다며 친구는 웃어넘겼지만, 나는 동심에 살짝 금이 간 기분으로 생각했다.

'아… 차라리 진실을 몰랐더라면…’

살짝이 욕심도 났다.  

세상에 하나쯤은
‘뮤지컬 한의원’이어도 신날 텐데...


최근에는 길을 가다가 '내면의 자유'를 '냉면의 자유'로 읽곤 귀여운 의인화에 혼자 빠졌다가 다시 돌아보곤 웃고 말았다. 냉면의 자유 (X) 내면의 자유 (O)

냉면이 자유를 얻게 되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일까 아님 냉면의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생각하다 바로잡은 정보에 진도를 멈추었다.

신기한 건 당시 냉면을 딱히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냉면의 자유를 떠올리니 냉면이 급 먹고 싶어졌다.


더불어 뭔가 예사롭지 않다 싶으면 예방 차원으로 다시 한번 보게 되는 것도 있다.

방심해 혼자 들뜨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얼마 전엔 손 하나 까딱 않고 쉬는 듯 연출한 사진을 보았다.

캡션으로 적힌 '아몰라 체어(↓)'를 보며, '아~ 몰라 (다 귀찮아)'를 떠올렸는데, 다시 보니 '아몰라'가 아니라 덴마크 브랜드인 '이몰라'였다.  

찰나의 시선이 직관을 빗겨 관통하는 경우들이다.

이쯤에서 생각해본다.

정황상 연결고리가 당최 없음에도 그렇게 보이는 건 '직감의 고장'일까. 아니면 '시력의 문제'일까.  

그조차 아님 '내 생각이 이상한 걸까'.  

답 대신 웃어버리고 만다.

사실 이유가 그리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술 더 떠 말이 생각을 앞지르는 경우도 있다.

지난번엔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 이 나무는 털이 언제쯤 자라는 거지?

물론 내가 하려던 말은 ‘털’이 아니라 ‘잎’이었다.

나의 발언에 나는 물론 우리 가족 모두 빵 터지고 말았다.


깊게 주의하지 않는다면, 이 불치병은 오래갈 것 같다.

생명에 지장은 없고, 대신 웃음 테니 이미지에 오는 타격일랑 대수롭지 않다.

뭐 정 곤란할 땐 농담으로 넘길 얄팍한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Spoon by Cibo Matto (출처: S4ns Youtube)
매거진의 이전글 초인적 힘의 기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