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운 May 08. 2022

행복의 기원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것

보통의 저녁, 강변북로는 으레 느리다. 딱히 답이 없으니 마음도 느리게 둔다.

그게 가능한 건 커피와 음악이 있어서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없던 여유도 생긴다.

줄기차게 음악을 듣거나 따라 부르거나 그마저 물릴 땐 라디오를 켠다.

퇴근길에 <세상의 모든 음악>이 있다는 건 두고두고 행운이다. 모든 선곡과 전기현 아저씨의 목소리에 애정이 간다. 방송을 들으며, 마음의 이불을 덮는다.


물론 기본적으로 강변북로를 좋아하기도 한다.

익숙함이 주는 편리도 있지만, 강을 곁에 둔 대개의 시간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침의 한강은 갓 지은 찰진 밥처럼 차르르 윤기가 돈다. 빛에 닿은 강의 미세한 표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도 같다.

서울의 매력 중 8할도 사시사철 도시 사이를 흐르는 강과 밤의 빛이라 생각한다. 밤이면 저마다 고유의 색을 밝히고 선 다리들도 그렇다.

 

얼마 전엔 집으로 가는 길에 너무 좋아 순간 핸들을 깜박 놓아버렸다.

라디오를 켜는 순간 '시네마 천국'의 ‘Love Theme’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난히 여유 없던 하루에 차에 타자마자 온몸의 전원이 나가버렸다.  

그렇게 얼마쯤 가서야 '아, 음악' 하며 라디오를 켜는데, 시네마 천국을 만난 거다.

반갑고 좋아 흥분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아아 했다.

늘 암막 커튼이 쳐져있던 학교 감상실에서 처음 본 '시네마 천국'과 토토와 알프레도 할아버지의 우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추억은 기억을 거슬러 열세 살의 말리의 영을 찾아갔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원작으로 한 연극을 앞두고 배역을 뽑는 제비뽑기가 있었다.

우리들의 눈에 주인공은 선악을 떠나 단연 스크루지 영감이었다.

사실 다른 인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기도 했다.

나의 차례가 돌아왔고, 내 손에는 ‘말리의 영’이라는 낯선 이름이 들려 있었다.

스크루지를 뽑은 친구들이 좋아할 때, 내 관심은 온통 말리의 영에게로 쏠려있었다. 그 마음은 대본을 보면서 더 강해졌다. 짧지만 강렬한 말리면 충분했다. 제대로 말리가 되어 보고 싶었다.  

그날부터 집에만 오면 엄마의 큰 숄을 뒤집어쓰고, 비장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연습했다. 끈을 칠하고 엮어 몸에 감을 사슬도 만들었다.

공연 당일 나는 이름처럼 말리의 유령이 되었다. 물론 조 별 연극이었으므로 나를 제외하고도 4명의 말리가 더 있던 걸로 기억한다.

능청에 가깝도록 연출한 말리는 나 혼자였는데, 선생님과 친구들은 가장 말리다웠다는 평을 해주었다.

몇몇 친구들은 내 첫 대사에 의자를 두드리며 환호성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그날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타인의 칭찬도, 뜨겁던 호응도 아니었다.

열세 살의 나는 스스로 신이 났고, 몸에 전기가 오르는 쾌감과 전율을 느꼈다.

한참이 흘러 대학교 때 우연히 오른 무대에선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날의 희열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대사와 동선,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발동해 온전히 몰입하지 못했다. 완벽하기는커녕 생각에 묶여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다. 외려 그 사실이 내 스스로 부끄러웠다.


다시 생각해도 어린 시절의 나는 기질적으로 용감했다. 달리 말해 나 자신에 중심이, 자신이 있었다.

주목에 대한 부담도, 실수에 대한 겁도, 뒷일의 앞선 걱정 따위도 없었다.

난 그것이 그때의 희열을 카타르시스로 기억하게 하는 원천임을 알고 있다.

행복으로 남은 이유라 생각한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다시 들으며, 나의 행복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그리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일일지 모른다. 아니 사실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Love Theme by Cinema Paradiso (출처: Flicks and music Youtube)

 





 


 

  


매거진의 이전글 접속이라는 도돌이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