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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un 17. 2022

어디까지나 참고 있을 뿐

자유로운 할머니의 특권처럼

흡연은 개인의 기호지만 배려가 전제되지 않은 자유라면 이야기는 불친절해진다.

지정되지 않은 장소에서의 흡연은 언제고 불편하다.  

우리 집 역시 같은 불편을 경험 중이다.

집으로 담배 냄새가 들어온 지 오래인데, 어느 집의 베란다 혹은 창가에서 오는 것이리라 추측한다.

흡연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일어나는데, 우리 집이 고층임에도 허공에서 피우듯 냄새가 매우 가깝다.

베란다를 튼 구조다 보니 유일한 예방은 환기 대신 창문 닫기뿐이다.

비슷한 사연들로 엘리베이터에 흡연 에티켓이 붙거나 안내방송이 종종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상황은 여전하다. 미스터리 당사자가 안 변할 걸 알면서도 한 번씩 날카로워지고, 무의미한 원망도 가진다.


내가 비흡연자라 유독 간접흡연에 관대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1995년도부터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대형 건물과 병원, 학교, 대중교통시설'과 같은 인구 밀집 시설에 금연구역이 지정되었다. 간접흡연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인데, 간접흡연이 직접흡연의 영향과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부산시는 작년부터 식당 앞 5미터도 금연구역으로 확대해 자율 구역으로 지정/운영 중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법령이나 조례에 속하지 않는 자율이다. 경각심을 기대할 뿐 과태료 부과의 강제성은 없다. 우리 아파트도 예외는 아닌데, 지나가던 행인부터 상가 이용객의 흡연이 줄을 잇다 보니 집으로 가는 통로는 간접흡연이 풀가동이다. 주민들의 민원에 구청에서 한 번씩 나온다 들었지만 별 성과는 없다고 들었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모자라 땅에 침을 뱉고 꽁초를 버리는 이들을 볼 땐 입에 물총을 쏘아 혼내주는 상상을 한다.


요령 없던 시절, 담배로 얽힌 일화도 있다.

카리스마를 풍기는 낯선 얼굴이었다. 선배들이 하나같이 일어나 인사하는 걸 보고 고학번 선배라 짐작했을 뿐이다. 복학생 선배는 말없이 담배를 꺼냈다.   

그때부터 선배의 줄담배가 시작되었는데, 윗선배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인 듯했다.

공간에는 나를 비롯한 동기들도 있었는데, 대부분이 비흡연자였다.

누구도 말은 못하고 불편한 기색만 비치고 있었다.

선배가 다음 담배를 꺼내 물 때였다.

- 선배님, 죄송하지만 담배 안 피워주실 수 있을까요.. 냄새가 힘들어서요…

친구들도 같이 있던 다른 선배들도 나와 담배 선배를 번갈아 쳐다봤다. 차마 일학년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줄은 몰랐던 까닭이다.

막상 말은 뱉어놓고 내심 걱정이 되었다.  

- 아, 미안. 싫은지 몰랐어

선배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말없이 종이컵에 담배를 문질러 껐다.

예상 못한 대답과 행동이었다.

그날  다른 선배에게 부탁해 담배 선배의 번호를 받았다. 버릇없는 나의 행동을 받아준 마음  선배에게 나의 행동에 대한 사과와 감사의 마음을 남겼다. 그리고 반성했다.

이후 언니와 난 담배 선배 이상의 각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흡연 논란에 성별은 문제가 안되어도 임신은 또 다른 문제다.

임신부의 흡연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부정이다.

엄마의 흡연은 태아의 간접흡연과 같기 때문이다.    

임신과 흡연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불편한 기억이 있다.   

레스토랑 내부에 위치한 여자 화장실이었다.

이용 칸이 하나뿐이었는데, 담배냄새와 함께 천장으로 담배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싶었는데, 문이 열리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여자는 임신 중이었다. 내 시선이 멈춘 곳을 안 여자는 백으로 배를 가린 채 그대로 나가버렸다.

충분히 고민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일면식도 없는 여자에게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비흡연자이지만, 뼛속까지는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욕구를 참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나 역시 담배를 피워본 경험이 있다.

대학원 연구실. 조교실을 겸한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유학을 떠난 남자 친구에게서 첫 편지가 왔다. 읽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났다. 다만, 엄한 타이밍에 인사를 하러 들른 전 조교 역시 나의 엄한 상황을 함께하고 말았다.

그는 내가 교수님과 일이 있던 걸로 지레짐작했다. 경험에서 우러난 (알고보면 무관한) 위로를 한참인가 해주고 떠났다.

다시 고요해진 연구실 책상으로 그가 두고 간 담배가 눈에 들어왔다.

늦은 저녁, 연구실 통창으로 바람을 맞으며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몰래 나쁜 짓을 하듯 가슴이 콩닥거렸다. 대망의 불이 붙고, 담배를 들이마시자 입 안 가득 텁텁한 기운이 느껴졌다. 연기를 뱉자 강렬한 첫인상 뒤로 위로받듯 그리움이 가라앉았다. 연기와 함께 슬픔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아…이 맛에 태우는구나...'

시작한다면 허술하게 넘어갈 거 같은 유혹이었다.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하고, 이후로 쭈욱 참아왔다.

언젠가 아기를 가질 거라면 담배를 시작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그대로다. 그 곁을 함께 하는 남자도 예외가 아니다.

자유의 차례는 그 이후로 양보하면 된다.  


내가 그리는 노년의 그림에 그 자유가 들어있다.

걸릴 거 없이 내 몸 하나 챙기면 될 때를 맞는다면, 염색의 힘은 빌리지 않고 좋아하는 스타일링을 한 채 가끔은 맛있게 담배를 태우고 싶다.

스스로 죄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집 안에 중정과 작은 연못을 두고, 초록 식물과 물을 보며 살고 싶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두려움 없이 글과 춤과 노래를 즐기며 유쾌하게 늙고 싶다. 때론 낯선 나를 만나 놀고 싶다.

그렇다고 담배가 죽고 못 사는 문제는 아니므로 가족이 걱정한다면 어떤 일탈인들 못 참을까 싶지만 언제나 처음이라는 기억이 문제다. 필터링한 듯 아름답고 몹시 강렬하다.

그날의 담배가 내게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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