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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un 13. 2022

꿈보다 무력한 슬픔

꿈으로나마 꾸는 꿈

외할머니를 보러 가기로 했다. 엄마랑 나는 이번만큼은 할머니를 쉬게 하기로 입을 맞췄다.

손주들이 온다면 한 상 가득 차리실 할머니를 잘 알아서였다.

할머니는 엄마가 맡기로 하고, 나는 식당을 예약하기로 했다.

평소 좋아하시던 그러나 손수 걸음하시긴 어려운 메뉴 위주로 생각했다.

맛집을 검색하는데, 회사에서 때아닌 호출이 왔다.

예측불허의 주말 회의가 야속하게 한시를 향해갔다.

기다리실 할머니 생각에 속이 타들어 가는데, 어디선가 알람이 울렸다.


눈을 뜨자 눈앞의 모든 게 사라졌다. 침대 위 내 몸엔 꿈속의 조바심만 남아 있었다.

꿈이 진짜가 아닌 현실에 꿈속의 기쁨은 눈을 뜨는 순간 납작해졌다.

할머니가 너무 그리웠고, 함께 하고 싶은 것도 한 보따리였다.

시작도 전에 흩어진 꿈과 현실을 분간할  없었다. 할머니가 계속 기다리고 계실 것만 같았다.

다시 꿈에 가야 해서 눈을 감는데, 안달만 날 뿐 정신은 점점 더 깨어갔다.

꿈이 아니란 걸 실감할수록 할머니를 만날 수 없단 현실이 나를 짓눌렀다.

할머니...

하늘에 할머니가 너무 그리워 가슴이 욱신거렸다.

불가능을 뛰어넘는 꿈에 반해 현실은 사실적이라 무력하고 슬펐다.


꿈으로 돌아가려는 또 다른 당위도 종종 있다.  

전쟁에서 아이를 구출해 탈출하다 깨어 버린 경우나 곧 데리러 올 테니 기다리라 하고 꿈에서 벗어난 경우들이다. 이따금 단골로 꾸는 꿈인데, 대부분 내가 구하는 상대는 처음 보는 어린아이들이다. 아이를 안고 달리는 내 몸은 긴장으로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꿈에서 갓 깬 새벽의 어둠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 여전히 날 고민 속에 두었다.

긴박하고도 슬픈 꿈의 경우, 꿈속의 인물들이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과 돌아갈 수 없는 무기력에 새벽 내내 꿈이 맴도는 기분이 들었다.

다만 좋은 꿈처럼 나쁜 꿈도 모두 끝은 있다.  

현실로의 전환이 간절할 땐 커튼을 젖히고 해를 기다렸다. 어둠보단 아침의 현실감이 회복을 더 빠르게 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너무 신나고 행복한 꿈도 여지없이 눈을 감고 돌아가려 안간힘을 쓴다.

이번처럼 그리운 누군가를 만나거나 함께 하는 시간이다. 꿈이래도 절실하고, 꿈이라서 더 절실하다.

꿈으로의 회귀는 열에 한번은 운좋게 성공했다.

캔디바 컬러의 바다에서 행복한 한때를 즐기는 꿈도 그중 하나였다.

바다에 몸을 담그려는 순간 깨버린 꿈을 질끈 눈을 감고 다시 찾은 이력이 생겼다.

일행의 미소와 투명하게 비치는 물속을 들여다 보던 환희가 진짜 같았다.

이제 막 음식을 입에 대려는 찰나 꿈에서 깬 날은 그 맛이 궁금해 안달나는 경우도 있다.

반면 귀신한테 쫓겨 달아나거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에서 깰 땐 성공적인 탈출에 감사하다.

그럴 때면 다시 그 꿈으로 돌아갈까 싶어 즐거운 상상을 처방하곤 했다.


어릴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꿈을 꾼다.

외할머니 꿈을 꾸고 나니 할머니를 빨리 만나 꼭 안아드리고 싶던 설렘이 선연하다.

숨을 쉬듯 그립다. 그리움은 만날 수 없는 현실에서 오기에 언제고 불편하다.

비록 나는 돌아왔지만, 꿈속의 나는 남아 할머니를 기다리게 하지 않고 행복하게 해드렸길.

나의 바람대로 그 몫을 다했길 바라본다. Amen.

 What Falling In Love Feels Like (출처: Sea Pearl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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