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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un 20. 2022

익숙함의 힘에 대하여

쑥뜸의 리추얼

몸이 별로일 땐 차(茶)를 내리고, 쑥뜸을 한다.

집에 가기 전부터 자연스레 그 생각이 차 있다.

오롯이 리추얼을 즐기며, 이 루틴의 시작인 할아버지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흐트러짐 없이 완벽해보이는 할아버지가 어려웠다.

할아버지댁에 가는 날에는 약간의 긴장감도 있었는데, 집에  간다고 꽁꽁 숨던 외갓집에서의 나와분명 온도가 달랐다.

우리를 반겨주셨지만 함께 놀이를 하거나 품에 안겨 재잘거린 정서는 없다.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간극에 다리를 놓아준 건 침과 뜸이었다.


어린 시절 유달리 작고 말랐던 나는 몸도 약했다.

친구들과 양껏 뛰놀다보면 제일 먼저 체력이 바닥나곤 했다.

나를 처음 안았던 날, 내가 너무 작아 우셨다는 엄마는 내가 2.5킬로그램으로 태어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셨다. 그 시간을 속상해하시다가도 잘 자란 지금에 고마워하시곤 했다.  

병원에서는 당시 나를 두고 인큐베이터에 해당하는 조건이지만 아기가 당차니 괜찮다고 했다 한다.

선생님 말씀처럼 나는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지 않고 당차게 잘 자랐다.

물론 지금의 키는 중학교 시절의 반전인데, 도토리가 용된 케이스다.

체력은 안 따라줘도 원체 일단 하고 보는 성미다 보니 잔병치레도 잦았다.

그런 나에게 할아버지는 침을 놓아 주셨는데, 할아버지의 침은 말을 잘 들었다.

신기하게도 기력을 금세 회복하곤 했다.

할아버지의 손은 남자손치고 보드랍고 고왔다.

나를 낫게 한 할아버지 손의 온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 손에 든 사랑도 잘 알고 있다.


어릴 적 기억의 연장인지 지금도 양의보단 한의를 선호하는 편이다.

몸에 무리 없이 취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 좋다.

이젠 할아버지가 곁에 계시지 않지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쑥뜸은 곧잘 한다.

뜸의 리추얼은 명상과 반신욕을 함께 즐기는 기분처럼 평화롭고 따뜻하다.  

익숙함이 주는 안정과 신뢰가 회복의 힘일 테고, 나의 향수가 지탱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형태가 다를 뿐 당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보여주신 할아버지 생각을 한다.   

내가 그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아차리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할아버지 생전에 나의 마음을 알린 것 역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의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열 마디 말 대신 미소를 짓고 계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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