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뜸의 리추얼
몸이 별로일 땐 차(茶)를 내리고, 쑥뜸을 한다.
집에 가기 전부터 자연스레 그 생각이 차 있다.
오롯이 리추얼을 즐기며, 이 루틴의 시작인 할아버지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흐트러짐 없이 완벽해보이는 할아버지가 어려웠다.
할아버지댁에 가는 날에는 약간의 긴장감도 있었는데, 집에 안 간다고 꽁꽁 숨던 외갓집에서의 나와는 분명 온도가 달랐다.
우리를 반겨주셨지만 함께 놀이를 하거나 품에 안겨 재잘거린 정서는 없다.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간극에 다리를 놓아준 건 침과 뜸이었다.
어린 시절 유달리 작고 말랐던 나는 몸도 약했다.
친구들과 양껏 뛰놀다보면 제일 먼저 체력이 바닥나곤 했다.
나를 처음 안았던 날, 내가 너무 작아 우셨다는 엄마는 내가 2.5킬로그램으로 태어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셨다. 그 시간을 속상해하시다가도 잘 자란 지금에 고마워하시곤 했다.
병원에서는 당시 나를 두고 인큐베이터에 해당하는 조건이지만 아기가 당차니 괜찮다고 했다 한다.
선생님 말씀처럼 나는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지 않고 당차게 잘 자랐다.
물론 지금의 키는 중학교 시절의 반전인데, 도토리가 용된 케이스다.
체력은 안 따라줘도 원체 일단 하고 보는 성미다 보니 잔병치레도 잦았다.
그런 나에게 할아버지는 침을 놓아 주셨는데, 할아버지의 침은 말을 잘 들었다.
신기하게도 기력을 금세 회복하곤 했다.
할아버지의 손은 남자손치고 보드랍고 고왔다.
나를 낫게 한 할아버지 손의 온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 손에 든 사랑도 잘 알고 있다.
어릴 적 기억의 연장인지 지금도 양의보단 한의를 선호하는 편이다.
몸에 무리 없이 취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 좋다.
이젠 할아버지가 곁에 계시지 않지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쑥뜸은 곧잘 한다.
뜸의 리추얼은 명상과 반신욕을 함께 즐기는 기분처럼 평화롭고 따뜻하다.
익숙함이 주는 안정과 신뢰가 회복의 힘일 테고, 나의 향수가 지탱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형태가 다를 뿐 당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보여주신 할아버지 생각을 한다.
내가 그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아차리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할아버지 생전에 나의 마음을 알린 것 역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의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열 마디 말 대신 미소를 짓고 계실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