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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un 29. 2022

아름다운 바람

알로하, 훌라

하와이에 두 번째 갔던 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선명해져 있다고.

패키지에서 진화한 자유 여행은 준비하는 마음부터 달랐다.

자발적으로 만나는 모든 것이 선명해 행복이 눈에 보였다.

다시 만난 섬들은 더 아름다운 어른이 되어 있었다.

한적해 좋았던 코올리나 라군에서

사실 <하와이 파이브 오>의 열렬한 시청자가 되었던 것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꿈꾸는 하와이>를 찾아 읽은 것도, 아오이 유우의 영화 <훌라 걸스>를 보게 된 것도, 내가 훌라(Hula)에 입문하게 된 시작 모두 알로하로 이어진 인연이었다.


공기부터 달콤한 여유와 함께 눈에 보이는 것들을 끌어안듯 담았다. 걷다가 물에 발을 담갔다가 초록에 둘러싸여 걷기를 반복했다. 행복에 감사했다.

해가 질 무렵 해변을 따라 걷는데 포근한 노랫소리가 귀에 감겼다. 고개를 돌리자 한 무리의 댄서들이 우쿨렐레에 맞춰 훌라를 추고 있었다.

석양이 지는 해변의 훌라는 말없는 위로처럼 다정하고 평화로웠다.

바람에 춤추는 꽃잎들을 보며 사랑에 빠졌다.


훌라는 자연을 닮은 아름다운 언어였다.

몸짓이 이야기를 대신하고, 사랑을 말했다.

여기에 섹시미를 강제하지 않는 우아함도 마음에 들었다. 기본 자세는 절도를 갖추되 움직임은 물결처럼 유영하면 되었다. 동작을 더 크고 잘하려 취하는 과함은 어울리지 않았다. 봄꽃 같은 미소를 유지하는 것도 하나의 안무인 춤이 곧 훌라(Hula)였다. 그 모두가 일체로 아름다웠다.


돌아와서도 훌라에 대한 마음이 식지 않았다.

고심해서 찾은 선생님의 수업을 등록했다.

스텝은 정해져 있어도, 표현의 방식은 쿠무(Kumu, 선생님)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일본인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강좌를 열고 한국에 오셨다. 본래도 미인이셨지만 춤을 출 때 누구보다 아름다운 분이었다.

내가 배운 훌라는 전통 카히코(kahiko)가 아닌 현대적 스타일의 훌라 아우아나('Auana)였다.

아우아나는 현재를 향해 있기에 표현에도 타협의 유연함과 여유가 있었다.

시작 자세를 취할 때면 코어와 온몸에 제법 힘이 들어갔는데, 마음의 균형을 잡듯 기분이 좋았다.   

아리송한 동작은 아리송한 대로 멜레(Mele, 노래)를 따라 핸드 모션으로 가사를 그려갔다. 사실 내겐 훌라를 추는 동안 도장을 찍은 듯 미소를 유지하는 게 더 어렵기도 했다.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는 첫날은 벅차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기분이 무언지 형용하기 어려웠다.

그해 겨울 선생님은 내게 '아름다운 바람(nani ahe)'이라는 하와이안 네임을 지어주셨다. 이름을 간직하며, 내 전생의 이름이었을까 생각했다.


수업 중 훌라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자신에게 있던 재능을 끌어내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훌라는 단순한 춤도, 삶의 방식도 아닌 삶 그 자체였다. 심장의 언어이기도 해 하와이 사람들의 심장 박동으로도 표현되었다.

훌라의 배경음악인 멜레(Mele)는 노래를 뜻하는데, 카오나(Kaona)라고 하는 숨은 뜻이 담겨 있다.

말의 힘이 너무 커 행운이나 불운을 가져올 수 있다 믿는 하와이 사람들은 가사를 지을 때, 어휘의 본 뜻 안에 숨은 의미인 카오나를 담아 감정의 깊이를 표현해왔다. 우회적으로 비유해 나름의 불안을 잠식시키는 방법이다.

예로, 꽃이 소중한 사람 즉 연인을, 샘물과 숲을 적시는 비가 남자를, 물이 인간관계나 감정을, 물고기가 매력적인 여성에게 반한 남자로 분한다.  

'생명의 숨결(ha) 나눈다(Alo)' 속뜻을 가진 하와이 인사말 알로하(Aloha)에도 어김없이 카오나가 있다.

A (Akahai) 친절, 관대  
L (Lokahi) 조화, 화합
O (Olu'olu) 기쁨
H (Ha'aha'a) 겸허, 겸손
A (Ahonui) 인내

우리가 숨 쉬듯 나누는 알로하의 숨은 가치였다.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을 기다리며 w/나의 첫 번째 파우
창 밖에는 바다가 있고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돌고래 풀이 바로 옆에 있어 돌고래들의 속삭임도 들려왔고, 시원하고 행복한 바람도 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힐로가 그녀를 불렀던 것이다.
힐로의 부드러운 비, 비에 젖어 빛나는 초록 나무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그 적막한 거리가 그녀를 원했던 것이다.


훌라는 수화 같은 것이다. 머리 위에다 빙글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다른 팔을 쭉 뻗는 것이 '바람' 즉 카마카니의 손동작이다. 곡에 따라, 또 거기에 등장하는 바람의 모습에 따라 표현 방식이 미묘하게 다른데, 그날의 밤바람은 정말 부드럽고 천국 같았다.
이 바람이야 말로 하와이구나, 하고 온몸으로 느꼈다. 몸이 둥실 떠 있는 듯한, 딱 맞는 온도의 물에 언제까지나 포근하게 잠겨 있는 느낌. 아무리 상상해 봐야 실제로 가 보지 않고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눈을 감고 있어도 언제나 바람이 나를 감싸고 있는 그 느낌. 그렇게 멋진 풍광을 안고 있는 지구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마리가 표현하는 바람, 바다, 비, 어느 것이나 마리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아름답고 영원했다. 뭐가 어떻든 상관없으니까, 훌라를 계속 춰 줬으면, 하고 생각했다.
유파도 장소도 어디든 좋으니까, 춤추는 마리가 가자 좋다. 그것이 훌라이기만 하면 뭐가 다르든 어떻든 상관없다고. 훌라 춤을 추는 것으로나마 겨우 이어져 있다. 훌라를 배우는 오래 기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싸웠던 사람도, 이제 만날 수 없는 사람도 다들 한 번은 훌라를 췄다. 그리고 그 사실이 있는 한, 어느 깊은 곳에서는 내내 사이좋은 친구이고, 서로를 이해할 수도 있다. 그것이 훌라다.
그리고, 이런 기분이야말로 정말 훌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늘 똑같은 일상 속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과 춤추며 나이를 먹어 간다. 천천히 서로를 알아 가고, 많은 시기를 경험한다. 모두와 함께, 그리고 하와이와도.

- 요시모토 바나나 <꿈꾸는 하와이> 중


살아있는 언어인 훌라를 추며, 오늘의 행복을 기록한다.

나의 춤은 경지에 오르려면 아직 멀었지만, 내가 향하는 훌라는 내가 행복한 춤이다.

언젠가 다시 하와이에 가게 된다면, 훌라를 이야기하고 싶다. 훌라로 이야기하고 싶다.


내 삶과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을 빌듯 생명의 숨결을 나눈다. Aloha.

내가 좋아하는 E O Mai(대답해주세요) (출처: Polynesian Club of Fresno Youtube)

Kaua i ka wai
Wai olohia o Kahualoa
Kokohi i ka wai puhia
Eku'u aloha, e o mai

Kaua i ka wai
Wai olohia o Kahualoa
Kokohi i ka wai puhia
Eku'u aloha, e o mai

Kaomi i ka wai
Wai mapuna ha'ele i ka poli
Pahe'e ika wai lohia
Eku'u aloha, e o mai

Kaomi i ka wai
Wai mapuna ha'ele i ka poli
Pahe'e ika wai lohia
Eku'u aloha, e o mai

Puhemo i ka wai
Wai welawela ho'eha i ka 'ili
E inu i ka wai a kena
Eku'u aloha, e o mai


흥겹고 사랑스러운 Waikiki Hula (출처: 33popoki Youtube)
내가 좋아하는 Mele 중 하나인 For the Lāhui (출처: Josh Tatofi Music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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