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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ul 01. 2022

내 동생 민지

예비할 수 없는 이별

민지는 깊고 까만 눈동자를 가진 내 동생이다.  

구 년 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눈도 채 뜨지 못하는 아가로 우리에게 와 열입곱 해를 함께 하고 떠났다.  

얼마 전 민지를 닮은 반려견을 키우는 이웃과 마주쳤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볼 때마다 민지 생각이 났다.


민지는 다정하고 속이 꽉 찬 아이였다.

까만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끔씩 민지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엄마 아빠가 알면 속상할 비밀이었다.

민지의 털은 늘 윤기가 흘렀고, 코는 반질반질 촉촉했다.

다니던 동물병원 원장님은 민지를 볼 때마다

- 민지는 늘 사랑을 많이 받은 태가 나네요

하시곤 했다.  

 

민지는 삼촌의 깜짝 선물이었는데, 몰티즈 으로 전해들었다.

사랑을 먹은 민지는 예쁘고 건강하게 자랐다.

한 가지 의아한 건 자랄수록 귀가 점점 더 쫑긋하게 서는 일이었다.

흔히 알던 몰티즈와는 달리 가 도통 누울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예방접종을 하러 갔던 날 원장님은 우리의 질문에 돌려 답을 하며 씨익 웃으셨다.

- 원래 동물은 혼종이 똑똑합니다. 살아남아야 하거든요. (웃음)

몰티즈로 분양을 받은 삼촌을 비롯해 우리에겐 그런 민지가 오히려 더 특별해보였다.


민지와 보낸 날들은 단순한 매일이 아니었다.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모든 날에 의미와 기쁨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민지의 까만 눈동자가 불투명해지고, 뛰노는 날보다 웅크리고 있는 날이 늘어나면서 불편한 시간을 예감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이별은 준비되지 않았다. 연습할 수도, 예비할 수도 없었다.   

 

이른 출근을 했던 어느 날 아침, 때 아닌 전화가 울렸다.

직감이란 그런 것일까. 엄마의 안개 같은 목소리가 무섭도록 낯설었다.  

무슨 일 있냐는 나의 말에 엄마는 아무것도 아니라 했지만 적막이 얼마나 지났을까.

불안을 참지 못한 내 입에서 '민지'가 튀어나오자 담담한 척 누르고 있던 엄마의 목소리가 균형을 잃고 울음에 뒤덮였다. 내 가슴도 와르르 무너졌다.

엄마의 흐느낌이 미치도록 아팠고, 민지에게 너무 미안했다.

무기력한 이별 앞에서 엄마와 난 말 없이 함께 울었다.


민지는 그렇게 조용히 우리를 떠났다.

눈도 채 뜨지 못하던 작은 생명이 속과 겉이 영글어 우리와 함께 한 지 17년. 난 그 시간이 결코 길다고 생각해본 적도, 녀석이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오래도록 우리의 전부였던 민지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조용히 잠을 청하듯 인기척 없이 눈을 감아 버렸다.


퉁퉁 부은 눈으로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이별의 냄새가 났다.

달려드는 현실이 겁이 나 몸이 떨렸다.

깊이 잠든 민지에게 걸어가는 내내 "미안해"를 중얼거렸다.

엄마가 녀석의 식은 뺨을 만지자 감겨 있던 눈이 얇게 뜨여지며 금세 눈가가 축축해졌다고 했다.  


죽으면 가장 늦게 닫히는 게 귀래.
그래서 상갓집에 모여 좋은 말을 남기고 기억하는 거래.
민지한테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얘기해주자.
우리 민지가 다 듣고 있을 거야..


민지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우리는 민지에 대한 끝없는 기억을 나누며 웃다 울기를 반복했다.

모두 민지로 인해 웃고, 민지를 통해 위로 받던 순간들이었다.

민지가 늘 머물던 자리를 지나다가 민지를 찾다가, 현실에 멍하니 서 있다가, 귀에 익은 방울 소리를 들었다. 민지의 영혼이 우리 곁을 맴도는 것 같았다.  

만날 순 없어도 민지는 우리 곁에 살아 있었다.

누군가를 보내는 일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낯섦과 긴 외로움인 걸 다시 실감했다.


불쑥불쑥 민지가 숨막히게 그립다.

민지가 살아 있다면, 더 좋은 경험을 할 세상이다.

이 경험을 주지 못해 더 생각나는 반려의 세상을 민지 없이 살아간다.

민지는 돌아올 수 없지만 세상의 모든 반려동물들이 버림받는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Apres un reve [Gabriel Faure] by Jian Wang & Göran Söllscher (출처: Lu F Youtube)
Jenkins: Palladio by Karl Jenkins (출처: Karl Jenkins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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