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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Jul 22. 2022

예사롭지 않은 이름

지속 가능한 채소, 어글리어스(Uglyus)

‘어글리어스(Uglyus)’를 구독 중이다.

예사롭지 않은 채소들이 매주 한 번 집을 찾아온다.

모두가 사연이 있는 채소들이다.

매주 월요일 그 주의 채소 리스트가 도착하고, 수요일에 자동결제가 되면, 금요일 새벽 배송으로 만남이 이뤄진다. 알레르기가 있거나 선호하지 않는 채소를 지정하면, 다른 품목으로 대체되어 온다.

새벽녘 집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은 믿음만큼 귀여움도 넘친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진실되게 담겨있다.

그 믿음은 채소 위 가지런히 놓인 종이 한 장이 보증한다. 노란 친환경 종이에는 생산지와 사연, 보관 방법에 대한 안내와 '못난이 채소 이야기'가 친구의 메모처럼 담겨있다.

고향이 제주인 미니 단호박의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건강히 자라는 과정에서 생긴
영광의 상처와 딱지가 있어요

그 영광의 상처와 딱지가 좋아 만나는 만큼 모두가 귀해보인다.

판로가 필요하다는 사연도 제법 많은데, 유통 과정을 알 수 없는 만큼 가장 노고가 클 생산자들의 고민이 느껴졌다. 뒷면에 담긴 ‘이번 주의 채소 레시피' 역시 쉽고 친절해 조리에 대한 고민도 일단 덜고 본다. 보루처럼 든든하다.

이번 주말, 식탁에 올릴 생각을 하며 이미 설레고 있다. 정확히는 채소 박스를 안은 순간부터다.

'어글리어스'라는 이름은 '못난이(Ugly Us)'와 '오염된 지구(Ugly Earth)'의 중의적 의미를 갖고 있다. 후자의 경우, 농산물은 예뻐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편견 어린 기준이 지구를 오염시킨다는 진실을 관통한다.

태어나자마자 외면당한 농산물은 음식물 쓰레기로 전락해 농가 손실에서 더 나아가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로 팽창해 돌아온다. 기회를 얻지 못한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못생겨서다.

이러한 고질적 악순환을 해소하고자 생겨난 개념이 바로 '푸드 리퍼브(Food Refurb)'다.

외모 불합격의 농산물을 적극 구매해 하나의 메뉴로 환골탈태시키는 움직임이다.

이미 오래된 이 트렌드는 2014년 프랑스의 슈퍼마켓 체인인 ‘엥테르마르셰(Intermarché)가 내세운 캠페인을 통해 조명받기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엥테르마르세

'못생긴 당근? 수프에 들어가면 상관없잖아'라는 문구는 소비자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불러왔고, 반향은 못난이 농산물의 판매로 이어졌다. 선순환의 시작이었다.  


나는 '어글리어스'로 당당하게 불리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부터 마음에 든다.

내실이 있기에 못생김은 치부도, 이슈도 아닌 단단한 자존감 같다.

한 명의 소비자로서 그 자존감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합리적 가격으로 만나는 유기농 채소라는 명목 외에 함께 하는 '정겨운 정서'도 마음에 든다.

내가 가지지 못한 시골의 향수 때문이다.

양가 모두 서울에 도심이라 정서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품고 자라왔다.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 댁에 간다는 친구들의 표현이 부러웠다. 내게 ‘시골'이라는 어감은 '할머니' 다음으로 포근한 설렘의 정서였다.

내겐 없는  시골이 마냥 부러웠다. 여행을 가야지만   있는 일상의 자연이었으니까.

대개 텃밭에서 감자를 캐고, 정자에서 수박을 잘라먹고, 냇가에서 가재 잡고, 바다에서 헤엄치는 그런 그림들이었다.

종종 장을 보지만 백화점 마트에서 고르는 유기농 인증이나 저탄소 식재료로도 포근한 정서의 친환경은 해갈되지 않았다. 반질반질 예쁘게 생긴 양질의 채소로는 알 수 없을 세계 같았다.

어글리어스는 그러한 정서와 환경 모두를 채워주는 기대를 안겨준다.

시골의 푸근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감사히도 집에서 만나는 그런 기분이다.

농가의 인심 좋은 어느 부부가 가족에게 먹일 마음으로 지은 농사의 수확물을 나눠 받는 느낌 같기도 하다.

매주 크고 작게 다를 다양한 채소들과의 만남도 설레고 기대된다.

항상 좋을 순 없고, 더러 부족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겠지만 그것마저 애정하고 있다.

다채로울 모든 만남들이 기대되는 여름 그리고 식탁이 있다. 이렇게 또 함께다.

 

■ 불금하고도 비 오는 날 _ 추천 BGM

곤란한 노래 by 수민&슬롬 (출처: Slom - 주제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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