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에너자이저 장꾸아들 키우기
누군가가 분명 말했는데. 아기가 말이 터지기 시작하면 정말 하루가 다르게 확확 늘면서 봇물 터지듯 늘기 시작한다고. 언젠가는 귀가 따가워서 그만 말하라고 할 것이라고.
도대체 우리 아이에게 그런 시점은 오는 건지 안 오는 건지 매일을 불안해하며 각종 치료 수업 및 카페며 인터넷이며 서적을 뒤적거리던 시기가 있었다. 말하기에 정말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 불러도 반응하는 게 영 신통지 않아서 이것저것 찾아보며 이런저런 병명에 의사도 아닌 주제에 내 아이를 끼워 맞춰보며 불안감만 눈덩이처럼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은 지금도 약간은 그렇다.
지나고 나면 충분히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바라봐 주고 사랑해 주지 못한 과거가 억울하고 보상받고 싶기도 하다. 누군가의 집착적인 잔소리와 카톡질로 인해 헛신경을 쓰고 내 마음껏 내 아이에 대한 마음과 행동을 자유롭게 행하지 못했던 과거도 억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쩌면 걱정하고, 검색하고 또 걱정하고, 또 더 좋은 의료진과 치료사를 찾아 헤맨 것 그 자체가 내가 내 아이를 돌보는 최선의 방식이었으리라.
거짓말처럼 아이는 이제 말을 시켜보면 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를 빤히 쳐다보고 입 모양도 본다. 아직 못하는 발음도 많고 발음의 정확도도 매우 떨어지지만 엄마필터를 켜고 들으면 제법 비슷하게 구사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의도하는 행동이나 발화를 해서 보상을 얻으면 상당히 신이 나고 뿌듯한 눈치다.
과자를 그냥 얻는 것과 뭔가 과제를 해결하고 칭찬과 보상으로 얻었을 때에 확실히 더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 확실하다. 아직 사회성과 호명 반응과 같은 것이 다른 아이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절대적 기준으로 과거의 내 아이와 비교했을 때는 분명한 발전이 있긴 하다. 예전 같으면 할 수 있는 자음과 모음, 단어를 메모장에 써 보다가 긁어 긁어 바닥까지 긁어 이것도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마음으로 우겼다. 그래봤자 그 단어의 개수는 대여섯 개 남짓이었다. 지금은 그 리스트를 작성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시키면 적어도 두 글자는 제법 비슷하게 흉내 낸다. 어려운 말은 '아.. 어려워서 못하겠는데..?' 하는 무언의 눈치를 본다. 아니면 최소한 음절 수라도 비슷하게 흉내 낸다. 잘 때에도 옹알이 같은 잠꼬대를 한다. 어쩌면 내 새끼도 부단히 속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뽀뽀를 하라고 하면 뽀뽀를 한다. 때로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뽀뽀'라는 말소리를 내어 보라는 것인데. 웃긴다. 한 번은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라고 했더니 꾸벅 인사를 해버렸다. '안녕'과 '인사'의 구분이 명확하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 참조는 많이 부족한 듯.
그치만 '응' '도리도리'만 해도 정말 뭘 원하는지 몰라서 답답하기 그지없던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아이의 발전과 아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주시는 많은 선생님과 치료사 선생님들께 감사하다. 일주일에 두 번 왕복 100km를 다닐 수 있게 해주는 나와 남편의 직장의 배려에 감사하다. 운전 겁쟁이였던 내가 120킬로로 밟으면서도 안정감을 느끼며 달릴 수 있는 자동차의 반자율주행 기술에 감사하다. 여태 한 번도 차에 타기 싫다고 뒤집어진 적 없는 아이에게 감사하다. 초반 몇 달을 제외하고는 치료 수업에 큰 저항 없이 입실하여 나름 열심히 노력해 주고 있는 아기의 체력과 정신력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