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하늘, 구름, 드라이플라워, 등산, 바람, 그 외 좋았던 모든 것
하늘은 이름도 참 좋다. 딸을 낳아도 아들을 낳아도 근사하게 붙여주기 좋다.
행복을 눈 앞에 두고도 자꾸만 마음이 다른 데로 해찰할 때, 고개랑 같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이름이다. 그게 흔하긴 해도, 오히려 못 누리는 날들이 더 많아서. 익숙하고 편한 것은 늘 그렇다. 아무리 예뻐도 잠깐 감탄. 오늘은 시간을 반 대로 써봐야지. 순수함을 놓지 않는 이들이 포착한 토막글을 보면 감수성이 배가 된다. 시인이 쓴 산문집은 그래서 좋다. 분명 어느 시 안에 농축해두었을 정 수의 자양분, 그 영양가 가득한 토양에서 해석도 할 필요 없이 신나게 흙놀이를 하는 기분이랄까. 순수하면 많이 슬프고 또 많이 즐겁다. 감정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모쪼록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면 이 편이 낫다.
오늘 산에 가볼까? 부쩍 운동에 재미 들린 신랑이 한 말이고, 지금 그는 또' 잔다. 일산으로, 북한산으로 오고 가는 차가 멈췄다가 움직였다가 한다. 미세먼지인지 황사인지 시야를 흐리는 통에 초록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지만 가보기에 너무 늦은 시간임은 분명하다. 오전 내내 그 긴 팔로 유리창을 닦아내고 미처 닫지 않은 창문을 발견했다. 풍경을 적으면서 바람을 쐰다. 오늘은 바람이 많아서 눈을 감고 산 정상이라고 마음을 속여서 쐬면 나를 속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먼지 많은 날 창문 여는 걸 그렇게 싫어하면서, 창문은 이렇게도 깨 끗하게 닦아놓고 묵묵해진 사람이라니. 네가 하고팠던 건 산행이 아니라 차가운 바람을 선물하는 거였니.
답답한 게 싫어, 어디든 통풍 잘 되는 게 좋은데 어느 틈에 드라이플라워가 풀썩 쓰러져 있다. 살아있는 식물에게는 빛과 물만큼 중요한 게 바람이랬는데.
예쁘긴 해도 말라 죽어 있는 네게는 독이었구나. 갑자기 힘이 난다. 예쁘게 웨딩드레스를 입기 위해서 신경질내며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나, 하고 말할 좋은 구실을 찾았다. 일요일 아침 모처럼 쌀밥을 먹고 너그러워진 나를 보며 헤실헤실, 웃음을 못참고 내는 그 숨소리가 생각난다. 드라이플라워는 제 자리에 꽂아두고 오늘은 저녁에도 탄수화물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