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살기 시로

(04. 아주 오래된 질문) 시를 쓰는 일

시를 쓰지 않는 것도 시를 쓰는 일이라면

by 아마추어리


아주 오래된 질문


선생님 말씀대로

시를 쓰지 않는 것도

시를 쓰는 일이라면


어느 날은 말이 되고

어느 밤엔 글이 되는

이 사람도 시가 될 수 있습니까


아주 오래된 질문을

여러 번 머릿속에 되뇌는 일도

시집이 될 수 있을까요


아무 말 못 해

혼자 앓고 끝내는

그러면 나도 시인이 되고 말겠네요


난해한 하루 속에서

제 기분을 간신히 찾아 곱씹는

삶은 사실

시처럼 아름다운 것이었군요




대학교 3학년 시절, 유명한 카피라이터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국어국문학과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인 서울 대학교의 분교 캠퍼스였는데, 이때부터 매일같이 기차를 타고 서울과 조치원을 오가는 익사이팅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시를 쓰지 않는 것도 시를 쓰는 일이다'라는 말을 들은 곳은 '시'에 대한 입문학 개론 강의실이었다. 수업 명도, 커리큘럼도 생각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그저 얼떨결에 수강신청을 하고 시간표를 확정하기 전에 들었던 OT수업 때였다. 물론 OT 이후로는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


교수님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시라고 했다. 일상을 사는 일도, 무언가를 먹는 일도, 섬세하게 느끼고 관찰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되기에 하는 말이거니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이해되지 않았다.


"심지어 시를 쓰지 않는 것도 시를 쓰는 일이다"


언뜻 듣기에는 멋지게 들렸다. 이제 막 상경해 서울 본교 엘리트 친구들과 문학을 공부할 생각에 한껏 마음이 부풀었던 내게는 더더욱. 온 세상이 문학적 낭만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심지어는 이미 내가 시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 강의를 정규 시간표에 넣지 않은 이유는 아주 시시콜콜한 것이었다. 시에 대한 소개를 끝낸 교수님께서는 시 한 편을 읽어주시고는 학생들에게 돌아가면서 작품을 비평하도록 했다. 분교 캠퍼스에서 막 상경해 맨 앞줄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앉은 나는 수업 시작부터 교수님의 눈에 띄는 학생이었고, 결국 첫 번째로 발표를 하게 됐다.


"주인공은 아마 이런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다른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로지 부끄러움만을 탓하지는 못하겠다. 생애 첫 문학수업 발표를 하고 만족하는 것이 이상할 만큼 수준이 낮았던 것은 사실이니까. 이어지는 학생들의 멋진 발표에 나는 금세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도망치듯 그 강의를 취소했다. 그리고 복수전공을 이수할 때까지 소설 수업만 들었다.


그럼에도 교수님의 그 한마디는 뇌 속 아주 깊은 곳에 남아있었나 보다. 직장인이 되고, 연차가 쌓이고 야근이 많아질수록 소설은커녕 블로그 글조차 쓸 시간이 없어졌다. 주말에 짬을 내서 책 몇 페이지를 읽는 것 빼고는 인생이 글과 멀어지고 있었다. 머지않아 나는 버스나 택시 안에서, 혹은 잠들기 전에 한 편씩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글을 써야 살아지는 사람'인데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한 가지 생각을 곱씹고 곱씹다가 그게 우연하게도 시가 된 것이다.


우연찮은 계기로 시를 알게 되고, 시를 쓰지 않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시를 쓰게 되었다.


우리가 너무 오랜 시간 아껴온 것은,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미 마음속에서 시작되어있는지도 모른다. 막연하다고 생각한 것들도, 나와는 멀다고 생각한 것들도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심지어는 이미 내 안에 있을 수도 있다.


닿을 듯 닿지 않던 과거의 한 사람을 생각하며 그 말을 떠올렸으나, 이제와 곱씹어보면 교수님의 말이 이해가 간다. 아마도 <'시'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언젠가 내게 그 사람도, 삶도, 그리고 시도 단번에 이해가 가는 날이 올까? 확실한 건 단 한 가지, 이런 고민을 하는 지금 이 순간도 다분히 시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녀의 극단적 표현을 빌려 표현해보자면, 이해되지 않는 삶마저도 삶 일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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