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살기 시로

(01. 송연먹)애태우지 않고 살아지는 법은 없다

시간이 아닌 세월을 사는 달인들처럼

by 아마추어리


송연먹


깊은 산

송연먹 달인은

그을음의 뜻을 알지


애타는 그 마음

완전히 태우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쩨쩨하게 하루 종일 태워야

오도 가도 못하는 연기 속에

그을음이라도 남는다고


시커면 잿가루

가지런히 주워모아

겨우 주먹 만한 먹 하나

만들어보면 알지


세상에 단 한 글자

쉽게 쓰여질 수 없다고


애태우지 않고

살아지는 법 없다고



부장이나 팀장 이상급의 선배들과 식사를 할때면 꼭 나오는 소리가 있다. 도배, 장판쪽을 배워볼까? 상담 자격증을 따볼까? 모두 퇴직 후 생계수단 마련을 위한 고민들이다.


내가 일하는 기획업무는 일의 강도에 비해 뚜렷한 기술이 없어보이는 직업이다. 세상을 분석하고, 치열하게 차별점을 찾고, 밤새 제안서와 계획안을 써내려간다. 그럼에도 십년 이상 이 일을 해온 선배들은 그놈의 '눈에 보이는 기술'이 없다는 것에 허무함을 느끼고, 늘 기술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녁을 먹으며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을 시청했으니 아마도 빨리 퇴근한 날이었을 것이다. 티비 속엔 소나무를 흙으로 만든 움막 안에 오래 태워, 그을음을 긁어 모아 먹을 만드는 장인이 나왔다.


마트에 파는 연양갱만한 먹 한 자루를 만드는 데에는 꼬박 몇 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흙으로 불구덩이를 만들고, 며칠동안 재를 태우는 연기 앞에 앉았다가 나중에는 움막속에 들어가 검은 재를 보석 모으듯이 소중히 쓸어담았다. 델 듯한 뜨거운 물로 먹을 반죽하고 나면 온몸은 시커멓게 베렸다. 제법 먹처럼 보이는 물건이 나왔는데도 어딘가에 오래 숙성을 해야 명품으로 완성된단다.


글쓰기(캘리그라피나 서예), 나무를 사랑하는 나는 밥을 먹다 말고 눈물을 그렁이며 끝까지 티비를 시청했다.


"보람차죠. 공짜로라도 기술을 가르쳐 이어가고 싶은데, 지원자가 없어요."


불현듯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자연 속에서 인내하고, 흙과 나무와 함께하는 시간은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 기술을 이어가는 장인이라는 명예와, 그 보람은 얼마나 달콤할까?


"너 가면 흙 파내는 것도 못해. 애초에 산 속에서 하룻밤만 잔다고 생각해봐"


달인의 인생을 가벼이 봤던 내 경솔한 생각은 짧은 한 마디에 지워졌다. 누가봐도 존경스럽고 인정받는 생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세상에 쉽게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은 없다. 그것이 달인이 대단한 이유이고, 또 그런 달인을 보고 감탄하며 사는 우리 직장인 또한 대단한 이유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시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의 단위를 '세월'로 묶어 초점을 바꾸면 삶이 달리 보인다.

달인이 검은 잿가루를 조금씩 모아 먹을 완성시키듯이, 매일 아침 무거운 몸을 끌고 일어나 출근하는 작은 하루들을 통해 직장인은 월간 보고서를 만들어내고, 연간 프로젝트를 완성시킨다.


크고 작은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다.

누구나 시간이라는 그을음 속에서 의미있는 세월을 살아간다는 것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수확은 온다] 여름과의 열렬한 작별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