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살기 시로

(15. 유기인) 제 꿈을 방치하는 자, 모두 유죄

현생에 쓸 돈 벌기 vs 글 쓰고 자아실현하기

by 아마추어리

유기인


출근길에 종종 길을 잃는다

버스에서는 개가 짖는다

미팅에 늦은 여자와

넥타이를 졸라 맨 남자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한다


모니터 속에서 개가 짖는다

정돈되지 않은 데이터 사이사이로

정렬된 셀 테두리가 숨 막혀

개는 많이 화난 것 같다


누군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

한 손으로 그림을 그리다 졸았다


길 잃은 펜 끝이

내내 가슴속을 굴러다니다

얼룩을 만들어냈다


잉크가 뚝뚝 번지고

얼룩 개는 그렇게 울고 있었다


그 펜으로 무언갈 써봐

안 쓰고 두니까 성난 개가 된 거야


퇴근길에 개가 짖는다

그렇게 시끄러우면 버리지 그래요?

옛 것들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


조용히 거울 앞에서 맞는 저녁

지갑엔 두둑한 돈이 있고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한 사람이 있고

거울엔 유기된 삶이 비친다




운명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직업적 숙명은 있다고 믿는다. 뚜렷한 개성이 없는 공무원이나 더 나아가 백수라 하더라도 말이다. 모두가 타고난 기질을 십분 발휘해 밥 벌어먹고 살진 못해도 가슴속엔 마음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이 있을 테다.


난 어릴 적부터 앞으로 남은 생 동안 글을 쓸 것을 알았다. 계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별 볼 일 없는 교내 백일장에서 은상인지 동상인지를 받았다. 정확히 금상은 아니었는데 할머니는 그것을 액자에 예쁘게 담아 거실 현관문 맞은편에 떡하니 걸어두었다. 그러고 어느 제삿날이었던가.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비범하네..."


그냥 칭찬도 아닌, 놀리기 위한 오버액션도 아닌 진심으로 놀란 반응에 되려 내가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분은 전날 어떤 꿈이라도 꾸고 오셨던 걸까. 돌이켜보니 너무 재미있는 경험이다. 마치 재연 드라마 속 신내림 받은 무당이 표독하게 한 마디 쏘아붙이는 장면처럼 그날의 기억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어쨌거나 그때부터였다. 나는 '글을 잘 쓰는 비범한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애초에 글로써 입에 풀칠을 하고, 집을 마련해 입신양명할 거란 기대는 없었다. 카피라이터로 취직했으나 그건 활자를 가지고 논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오롯이 내 이야기를 쓰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좀 더 노력하면 잡지사 에디터나 방송작가 같은 것도 될 수 있었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직업 삼지 않아야 할 이유'들을 친구들의 입과 인터넷을 통해 너무도 많이 전해 들었다. 나름 실패했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돈벌이와 자아실현이 별개라고 해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직장인 2~3년 차까지는 퇴근 후에 블로그 글쓰기나 엽서시 공모전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글쓰기에 대한 갈증을 채웠다. 조금씩 '월급 루팡'하는 시간이면 회사 프린터로 출품작을 프린트해 점심시간에 몰래 투고를 하고 오기도 했다.


그러다 대리를 단 지 1년도 안되었을 무렵에는 너무 바빠서 회사 보고서 쓰기에도 모자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무렵 나는 '카피라이터'라는 허울 좋은 직함을 달고선 왜 고상하게 도서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문장수 집을 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분노로 꽉 차 있었다(이 말은 그 당시 다니던 회사가 너무 힘들어 다른 아무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무려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 대표라는 사람이 했던 말이다. 카피라이터를 아무것도 안 하면서 글씨 한 줄 띡 적고 마는 직업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매일 아침엔 클라이언트의 오탈자 수정사항을 받아 적기 바빴고, 결국에는 광고주가 부르는 대로 받아 적은 카피와 어울리는 디자인 레퍼런스를 찾느라 밤을 새우곤 했다.


글을 쓰는 시간이 없어지자 다소 예민하고 모든 일에 무기력해졌다. 마치 화를 꾹꾹 참고 살다가 화병이 나버리는 것처럼, 이렇게 글을 쓰지 않고 살아서는 이름 모를 다른 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 때 내 손과 각종 물건에는 항상 볼펜 똥이 묻어있었다. 치열하게 메모하고 아이데이션 하느라 하루종일 모나미펜이나 플러스펜과 씨름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순간, 내가 나를 유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 속 볼펜은 굶주린 개처럼 잉크를 뚝뚝 흘리고 있는데, 잡일 하기에 바빠 심이고 뚜껑이고 뭐고 나뒹굴게 방치해두는. 유미의 세포들처럼 세포로 표현하자면 내 프라임 세포인 '글쓰기 세포'를 차가운 뒤편에 가둬두고 쫄쫄 굶기는.


그때 이 시를 쓰고는 얼마 안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같이 일하던 동료 하나도 퇴사 후에 책을 내고 서점을 한다고 들었다. 나는 좀 더 글쓰기와 멀어진 회사와 직업을 택했지만, 글쓰기에 노련한 선배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영광과 퇴근 후 브런치를 쓸 정도의 여유를 찾게 되었다.


누가 보면 "대형 출판사에서 몇 쇄 찍어낸 줄 알겠다"고 할 것처럼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다.


여기 브런치에도 자신을 글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 혹은 써야만 살아지는 사람이라 여기는 작가들이 많을 것 같다. 그래, 우리는 선천적으로 글쓰기라는 자기표현을 하지 않으면 답답해 죽을지도 모르는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가 쓰고 싶은 것만 써서 돈 벌어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모두 작가라는 숙명을 짊어지고 태어났으니 이렇게 살아보면 어떨까.


돈은 쓸 만큼만 벌되,

글 하나는 아주 잘 쓰는 그런 인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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