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왜 찝찝한가
여름과 밤과 추태에 관하여
쓸쓸하고 편안한 겨울이 지나고
여름은 진짜가 판치는 계절
주체할 수 없이 끈적거리는 본능과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비현실적인 풍경
땀 같은 실수와
벌레 같은 후회와
그럼에도 자꾸만 생겨나는 추억과
한없을 듯 내리쬐다 갑자기 사라지는
열병의 순간들을
여름을 사랑할 수 있어야
인생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비로소 생명이 될 것 같아
여름이 싫은 이유는 수천수만 가지지만 사실은 인생의 온갖 흑역사가 그곳에 있어서다. 죄다 여름이었다. 새벽 두 시에 슬리퍼 차림으로 한 손에 술 탄 콜라를 들고 종로 일대를 쏘다니던 것도. 하루아침에 퇴사를 하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길가의 쓰레기통에 다이어리를 덩크슛하던 일도.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눈앞의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몸을 섞어버리고 싶었던 때도. 후회와 흑역사의 서막, 여름밤의 술은 그렇게 지독하다.
기이하다. 여름만큼 날 것이 당기는 계절이 있을까. 싱싱한 회, 굴무침, 차가운 조개젓. 그런데 또 여름에는 날 것을 먹지 말란다. 쉽게 부패된다고, 배탈이 나는 식중독 균이 있다고. 사람 본능을 이렇게 주체하기 어렵게 만들어놓고, 악으로 깡으로 참아야만 하는 생태계라니? 이쯤 되면 이 지구라는 세계관의 테마는 고통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괜찮을까?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 행사장에서 같이 점심을 하자며, 그 더운 날씨에 삼계탕집을 예약한 클라이언트처럼. 수십 명의 MZ세대를 식당에 거느리고 이열치열이라는 완벽한 탈본능의 욕구쯤은 실현해줘야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걸까. 짜증이 조금 나긴 했다. 부럽진 않고, 그 나름대로 여름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얼마 전엔 모처럼만의 여름밤 술자리 분위기에 취해 해방을 외치며 필름이 끊기도록 마셨다. 다음날 떠오르는 건 '이때 내가 추태 부린 것 같은데?', '이 말은 왜 했지?'같은 것들. 사실 서른이 넘어가니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이 정도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것보다는 나보다 어린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노심초사였다. 다행히 그날의 일은 마무리됐다.
그러고 며칠 뒤에, 손이 닿는 곳마다 때가 문질문질 나와서 한참을 샤워기 앞에 서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나의 추한 면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으면. 내가 얼마나 추한 면이 많은 사람인데, 바보 같은 사람들. 그것도 모르고 내 모습의 1/100도 안 되는 잠깐의 추태를 보고 나를 다시 보다니.
추한 걸 감추고 사는 게 얼마나 귀찮고 피곤한지, 모든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까. 추함 100%가 고정값이라면 여름밤 기분 좋아 잠깐 부린 추태에 며칠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을 테다. 가끔 내킬 때 일반적인 행동만 해도 칭찬받고, 착한 일을 하면 박수갈채를 받을 수도 있다. 상상한 해도 유쾌한 세상이다. 갑자기 당장 내일 누군가 눈도 못 뜨게 취해서 나한테 온갖 주사를 부려도 한없이 사랑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개운하게 몸을 씻고 나와서 매끈해진 몸을 선풍기에 말리며 지난 며칠을 곱씹는다. 6.25 전쟁 이후 부자 동네에서만 몇십 년을 살아온 파지 줍는 할머니가 최근에 아주 부자인 50대 여성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젊을 때 예쁘게 하고 살어. 예쁜 것만 보고"
그 말을 들은 여성은 그 말이 '날 것' 같다고 했다. 회사 이윤이니 주식정보니 하는 말만 듣다가, 며칠에 한 번 파지를 건네주며 듣는 그 톡 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에겐 얼마나 개운할까.
여름이 싫은 이유가 내 본능의 열기를 맘껏 펼치고 살만큼 쿨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임은 안다. 그럼에도 차가운 해산물을 한 움큼 집어삼키든, 옷을 벗어재끼든, 아니면 사회의 가면을 벗어던지든. 그게 나든지 남이든지 50대 60대든지 온통 날 것이 되고 싶은 날들이다.